사회 사회일반

인권변호사…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거친 시민운동 산증인

[새 서울시장 박원순] ■ 박원순 누구인가<br>경남 창녕 농가 출신…유신반대 시위로 서울대 제적<br>말誌 보도지침·박종철 고문치사 등 시국사건 변론<br>푸근한 인상에 추진력 강하고 꼼꼼‘조용한 카리스마’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는 경남 창녕 출신의 자칭 ‘촌놈’이다. 직업이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이다. 사회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라는 뜻에 맞게 검사와 인권변호사를 거쳐 참여연대ㆍ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ㆍ희망제작소 등 시민운동의 산 증인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많이 해왔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서울’을 만들어 행정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박 당선자를 ‘원순씨’라고 부른다. 그만큼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수평적 관계를 중시한다. 그렇다고 일을 느슨하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같이 일한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실제 기자가 선거운동에 동행하며 살펴봤을 때도 꼼꼼히 메모하면서 “제가 ‘꼼꼼원순’이에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아름다운재단 출범 초기 강한 추진력을 발휘해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시와 산하기관 공무원들이 긴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이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화를 잘 안 내지만 직원들이 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준비가 제대로 된 거냐”며 한마디를 툭 던지는 ‘조용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다. 박 당선자는 멸종위기 동물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명함에 ‘넓적부리도요새’를 써놓았다. 그 새가 작지만 멀리 나는 것처럼 자신을 낮추면서 멀리 보고 행정을 펼치겠다는 포부다. 지난 1956년 경남 창녕의 시골농가에서 2남5녀 가운데 차남(여섯째)으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까지 시골에서 다녔다. 책을 좋아했던 그는 형이 유학하던 서울로 온 뒤 재수해서 경기고에 입학했다. 고교 3학년 때 결핵성 늑막염을 앓으며 또 재수해서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다. 그가 서울대 법학과 제적으로 잘못 알려졌던 것은 계속 서울대를 다녔다면 2학년 때 법학과 등을 선택할 수 있었고 1980년 복학 기회가 왔을 때 법학과를 선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입학한지 석 달 만인 1975년 6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우연하게 유신체제 반대시위에 참여한 뒤 4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한 뒤 제적된다. 촌놈이 서울대라는 간판을 업고 기득권 세력에 편입될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것이다. 그는 이후 1979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 뒤 1980년 사법고시(22회)에 합격했다. 뚝심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투옥경력에도 불구하고 검사로 임명돼 대구지검에서 1년여 검사생활을 하다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선다. 특히 사법연수원에서 동기로 만난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서울대를 수석 졸업한 대표적 운동권이었던 조 변호사는 박 당선자의 멘토격으로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검사 사직에 대해서는 “사형집행 참관이 싫었다.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았다”는 게 박 당선자의 얘기다. 이후 박 당선자는 전두환 군부독재정권 하이던 1984년 조 변호사와 같이 공익소송에 적극 나서 망원동 수재(水災) 사건에 대해 결국 5년 만에 승소판결을 끌어낸다. 부천경찰서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정권의 언론보도지침을 폭로한 ‘말지’ 보도지침 사건, 부산 미 문화원 점거 사건,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를 만들어 이사장을 지냈고 1988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설립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91년 8월부터 2년여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하며 시민 단체활동을 지켜본 뒤 1994년 ‘참여연대’를 설립해 1995~2002년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이때 삼성 등 재벌기업을 상대로 ‘소액주주 권리찾기’ 운동 등 경제개혁운동을 폈고 2000년 총선에서 낙천ㆍ낙선운동 등을 해 주목을 받았다. 국세청 앞에서 처음으로 ‘1인 시위’를 벌여 색다른 시위문화로 만들기도 했다. 이후 비판과 감시 위주의 참여연대를 후배들에게 맡긴 채 기부ㆍ나눔ㆍ참여에 역점을 둔 시민운동을 모색하겠다는 취지하에 2001년부터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만들어 총괄상임이사를 지냈다. 아름다운재단은 1,000억원가량의 기부금을 모아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일에 집행했고 아름다운가게는 물품 기증과 공정무역상품 판매 등을 통해 매장 수를 100여개까지 늘렸다. 이때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의 기부를 받은 것을 놓고 선거과정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기부문화 확산에 많은 기여를 했고 사적으로 쓴 게 아니라 소외된 이웃을 위해 썼는데 무슨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박 당선자는 일축했다. 그는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이끌면서 2006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아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창업을 지원, 사회적 기업을 키우는 등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주력했다. “내가 살면서 이룬 작은 성취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바른 생각들이 아이들의 유산이 됐으면 좋겠다”고 유언장을 미리 쓴 박 당선자가 과연 ‘소통의 달인’으로서 ‘시민이 주가 되는 시정’을 펼지 주목된다. 오세훈 전 시장과의 차별화 방향과 폭ㆍ깊이뿐만 아니라 조순ㆍ고건ㆍ이명박ㆍ오세훈 전 민선시장들처럼 대통령을 꿈꾸게 될지도 관심을 모은다. ▦1956년 경남 창녕 ▦경기고ㆍ서울대 사회계열 중퇴, 단국대 사학과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방문교수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대구지검 검사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대한변협 인권위원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재단ㆍ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단재상 학술 부문,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 만해대상 실천 부문, 심산상 학술 및 시민운동공로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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