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쌀 관세화 전환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우리나라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쌀 시장 개방(관세화)을 10년씩 두 차례 유예받아 올해 말로 시한이 다가왔다. 세계무역기구(WTO) 159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 외에 유일하게 개방 안 한 필리핀은 최근 WTO 이사회에서 추가 유예를 거부당했다. 우리는 종료 3개월 전인 9월까지 관세화 전환 여부를 WTO에 통보해야 하고 정부안이 6월까지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어서 최근 들어 논의가 무성해지고 있다. 쌀 관세화에 대한 찬반 주장을 싣는다.

●찬성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개방한 日·대만 쌀산업 위축 징후 없어

고율 관세 산출 방안에 지혜 모아야


통상적으로 시장 개방은 경쟁력 있는 양질의 저렴한 상품이 수입돼 국내 소비자의 이익이 늘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해당 상품을 생산하는 국내 생산자는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해당 상품의 대외 경쟁력이 향상되는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도 한다. 소비자 이익을 위해 대부분 낮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한다.

하지만 쌀은 특별 취급을 받아오고 있다. 2014년까지 관세를 부과해 시장을 개방하는 대신에(관세화 유예) 일정 물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기로 했으며 수입 쌀은 정부의 관리하에 가공용과 밥쌀용으로 소비하고 있다.

따라서 기상 여건이 좋아서 풍년이 드는 경우에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약속한 물량을 수입해야 한다. 2014년에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은 40만9,000톤이며 이는 목표 생산량의 약 10%에 해당한다.

관세화로 개방을 하지 않는 대신에 10%의 쌀 시장을 외국에 내준 것이다. 올해 말이면 쌀 시장 개방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이는 식량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정부가 쌀 시장을 관세화로 개방한다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가 허용하는 방식으로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개방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를 위해서 저율의 관세를 부과해 수입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과 대만은 쌀 시장을 관세화로 개방하면서 각각 1,200%와 560% 정도의 관세를 적용했다. 관세화로 시장을 개방한 후 추가적으로 수입된 물량은 외국 식당 등 특수 목적용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관세화로 전환한 후 12~15년이 경과했지만 외부 영향으로 쌀 산업이 위축됐다는 징후는 없다. 우리나라도 WTO가 허용하는 방식으로 산출된 관세를 부과하면 추가적인 쌀 수입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쌀 시장을 개방한다고 해서 소비자의 이익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농업인의 이익이 보호를 받는 것이다.

관세화로 시장 개방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까. 필리핀의 사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줬다.

필리핀은 쌀에 대해서 2012년까지 관세화 유예를 인정받았으며 세 번째 관세화 유예 연장을 시도하고 있다. 관세화 유예를 5년간 연장하는 대신에 의무 수입량을 35만톤에서 80만5,000톤으로 2.3배 늘리고 그 이후에는 관세화로 전환하는 계획을 WTO에 제시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2014년 4월9일 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부결됐다. 이해당사국들이 관세화 유예 연장의 대가로 요구한 추가적인 양보를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세화로 시장을 개방하지 않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보가 불가피함을 보여줬다.


우리나라가 관세화 전환을 하지 않겠다면 필리핀과 마찬가지로 의무 수입량을 대폭 늘려야 하고 이해당사국으로부터 어떠한 추가적인 양보를 요구받을지 모를 일이다. 관세화 유예 추가 연장은 식량 주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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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화 전환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남은 과제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고율의 관세가 산출될 수 있도록 모든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또한 관세화 전환 이후 쌀 산업이 직면할 위험성은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그에 상응하는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반대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최선책 '현상유지' 위해 노력조차 안해

관세화만 고집 땐 통상협상서도 불리


쌀 시장 전면 개방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공식 발표만 없었을 뿐 정부의 입장은 사실상 내년부터 쌀 시장을 관세화로 개방하는 것으로 결정한 상태나 다름없다.

농민단체를 포함한 식량 주권 지키기 범국민운동본부는 관세화 일변도로 흐르는 정부 입장을 비판하면서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는 올해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 유지(standing still)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도 인정하듯이 관세화보다는 현상 유지가 국내 쌀 농업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정부는 현상 유지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세화로 개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현상 유지가 최선의 방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정작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도나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상대방 국가와 진지하게 협상을 벌이거나 세계무역기구(WTO)에 공식적으로 질의하는 등의 노력은 아예 하지도 않고 현상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쌀 관세화는 우리나라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다. 이 말은 관세화보다 더 좋은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시도해보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선택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관세화만을 고집하는 이 정부는 '총성 없는 전쟁'으로 불리는 통상협상에서 순진하거나 무능하거나 둘 중 하나다.

WTO 농업협정문에 따라 선진국은 6년(1995~2000년), 개발도상국은 10년(1995~2004년) 동안 의무를 이행했다. 그리고 협정문 제20조에 규정된, 이른바 DDA 농업 협상으로 불리는 새로운 협정문이 나올 때까지는 추가적인 개방 조치 없이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은 2000년의 개방 수준에, 개발도상국은 2004년의 개방 수준에 머물면서 현재까지 각각 10년, 14년 동안 현상 유지를 해왔다. 이런 상황과 논리를 무시하고 내년부터 쌀 시장을 관세화로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른 나라의 현상 유지에 상관없이 우리나라만 일방적으로 추가적이고 새로운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다른 나라와의 형평성도 요구하지 못하는 이런 식의 순진함은 결국 쌀 농업과 농민의 피해만 키울 뿐이다.

어차피 정부가 관세화를 선택하더라도 다른 이해당사국과의 협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현상 유지를 선택하더라도 주요 이해당사국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으로 귀결될 것이다. 게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한중 FTA 등과 연계해 쌀도 협상의 대상에 포함될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결국 쌀 문제는 주요 이해당사국과의 복합적인 협상을 통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사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관세화로 자승자박의 자충수를 두고서 협상장에 나서는 것은 무능한 오류를 범하는 것과 같다. 쌀과 연관된 여러 가지 협상이 예정돼 있거나 혹은 예상되는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차원의 방정식을 풀어가는 고도의 해법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난해 12월 인도 정부가 자국의 WTO 협정문 위반 정책을 다른 나라들이 문제 삼지 않기로 WTO 최고의결기구인 각료회의에서 합의문을 이끌어낸 통상협상의 의지와 능력을 우리 정부는 반면교사의 사례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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