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거 풀려나와 글로벌 시장을 헤집고 다니던 자금의 흐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융완화 공조체제 아래 일제히 돈을 풀어왔던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엇갈리면서 각국 금리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글로벌 자금이 고금리 통화로 빠르게 쏠리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자금이 눈에 띄게 몰리기 시작한 것은 유로화다. 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먼저 통화 긴축기조로 돌아선 가운데 6일(현지시간) 미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는 지난해 1월 이래 14개월 만에 최고 수준인 1유로당 1.4350달러까지 올라섰다.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ECB가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이날 금융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최고조에 달한 결과다. 크리스토프 킨드프랑크푸르트트러스트 자산배분 부문장은 "지금은 유럽 금리인상 사이클의 시작단계일 뿐"이라며 "시장에서는 앞으로 1년 내에 금리가 2.25%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예상대로 ECB가 목표치(2% 미만)를 크게 웃돈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억제하기 위해 앞으로 연쇄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시중에 넘쳐나는 글로벌 자금의 유로권 유입은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주달러화 역시 고금리와 경기회복 기대감을 앞세워 글로벌 투자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날 도쿄외환시장에서 1호주달러는 1.0481달러까지 치솟아 1983년 12월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이래 최고 수준에 달했다. 엔화에 대해서도 1호주달러당 89.40엔으로 2008년 9월 이래 2년6개월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지난해 말의 홍수피해에도 불구하고 4.75%에 달하는 높은 기준금리와 빠른 경제회복,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이 맞물려 고수익 투자대상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우리나라와 브라질ㆍ필리핀ㆍ중국ㆍ태국 등 신흥국가들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3월 이래 금리인상을 단행해 이머징마켓으로의 자금유입을 부추기고 있다. 반면 지금까지 안전자산으로서 일본 엔화에 투자됐던 글로벌 자금은 지난달 대지진의 여파로 꾸준히 빠져나가고 있다. 사실상의 제로금리 정책에 더해 대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추가 금융완화까지 이뤄지고 있는데다 대지진 및 원전 사태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일본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꺾인 것이 배경이다. 이에 따라 엔화를 저금리에 빌려 고금리의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런던 소재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의 G-10 통화전략 담당자인 레나 코밀레바는 "긴축을 추진하는 다른 중앙은행들과 달리 일본은행이 추가 완화에 나섬에 따라 엔화가 캐리 트레이드를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행은 대지진 발생 이후 지금까지 금융기관에 대해 총 80조엔에 육박하는 긴급 단기유동성 지원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날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는 기존 0~0.1% 수준의 정책금리(제로금리) 정책 유지와 함께 지진 피해지역 금융기관에 총 1조엔 규모의 복구자금을 연리 0.1%에 대출해주기로 하는 등 '돈 풀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자금흐름의 변수는 미국이다. 미국은 6월까지 2차 양적완화 정책을 마무리 짓고 하반기 이후 '출구전략'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이 3차 양적완화에 나서지 않는 선에서 완만한 출구전략을 모색할지, 금리인상을 통한 '긴축'으로 돌아설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이 공격적인 금융완화를 끝내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긴축에 나설 경우 "미국의 금융완화로 아시아 각국에 유입된 대규모 투자자금이 역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과잉유동성과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추세 속에서 앞으로 미국의 물가상승이 본격화할 경우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시중에 자금이 넘쳐나는 과잉유동성의 시대가 머지않아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