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9월 16일] 불순의 말, 사탄의 소리

[데스크 칼럼/9월 16일] 불순의 말, 사탄의 소리 부국장대우 문화레저부장 홍현종 hjhong@sed.co.kr 말 재주의 프로들이 모였다는 정치판. 사랑과 자비가 그 정체성인 종교. 대화에 관한 한 막힐 게 없을 것 같은 이들 영역이 지금 이 땅에서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소통부재의 구역이라면 적잖이 놀랍다. 제정(祭政)이 뒤섞이며 각각의 종교로 편가름하는 형국은 학연과 지연, 이데올로기 가름으로 가뜩이나 시달려온 이 나라 국민들을 더욱 지치게 하고 있다. 혼돈의 와중에 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대통령의 첫 마디부터 이해가 어렵다. 일부 공직자들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종교 편향적 언행을 했다며 공무원 사회를 주의시킨 대통령의 말이 난해한 건 결자(結者)와 해지자(解之者), 묶은 자가 누구고 풀어야 할 자가 누군지를 혼동케 하기 때문이다. 권부 주변 인사들의 부적절한 종교관련 발언이 이어졌지만 정작 첫 단추는 명확히 대통령 자신이 잘못 끼웠다. 부하들 만의 문제로 돌리는 것 같은 뉴앙스의 화법, 신뢰는 소소한 부분에서부터 금이 가고 있다. 지금 이 나라가 겪고 있는 소통 부재는 다름아닌 이런 식의 신뢰 결여의 산물이다. 정치와 종교가 통했으니… 사단의 서곡은 어쩌면 대통령이 서울 시장이던 시절부터 예고된 일이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시장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4년. 서울 시장과는 또 다른 차원 국가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이 보여준 종교 편향적 태도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신(新)제정일치 시대가 찾아온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의 상황으로 번져왔다. 정부 조각ㆍ첫 인사부터 교회 인맥 얘기가 나왔고 청와대를 넘어 집권세력 이곳저곳서 기독교 편향 또는 불교 폄훼로 의심받을 만한 말들이 줄줄이 튀어나면서다. 새 정권 탄생과 맞물려 늘 세간에 오르내리는 이른바 '실세' 동네에 새롭게 특정 종교 이름이 거론되는 일은 역시 교회 장로인 김영삼 정부때도 없던, 집권세력의 경박함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최근 불교계가 취하고 있는 대응에도 물론 문제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불교계가 갖고 있는 근원적 피해 의식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원인은 외면한 채 결과 만으로만 불교 대응의 문제 만을 지적하는 보수 언론들의 시각은 이번에도 예외없이 본말을 전도시키고 있다. 소통의 관점에서 최근 혼란 상황을 바라 본다면 오늘 한국 교회 보수 교단의 공격적 선교의 방식은 적어도 상식적 통념으로 볼때 이곳 저곳서 갈등의 골을 깊게 할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가야 할 처지에서 역차별의 가능성을 근거로 종교차별 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고 나선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공식 입장은 그 대표적 사례다. 종교의 자유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배치되는 다른 종교에 대해 합법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다는 게 그들 주장이다. 만약 그런 논리를 다른 종교가 기독교를 향해 똑같이 내세우고 있다고 가정하자. 결코 손놓고 기도만 하고 있을 기독교 교단이겠는가. 결국 어느 한쪽의 일방적이고 공세적인 선교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극단적 대결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개신교가 한국 사회 정신ㆍ물질적 발전에 적잖은 공을 세워온 점을 인정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성장 위주의 물량주의와 자신을 낮추는 것과는 거리가 먼 독단성이다. 바로 이 정부의 색깔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촛불시위를 청와대 뒷산에서 지켜봤다는 감상적 소회가 담긴 대통령의 두번에 걸친 사과 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 정부는 촛불 시위 자체를 불순세력의 책동으로 몰며 좌파 척결의 메카시즘적 정국을 만들어 가고 권력 지향성의 일부 교단은 타 종교와의 공존을 거부하며 공안정국의 시류에 편승하고 있다. 지나친 부분이 있을 지언정 정부는 촛불 시위로부터 민심에 귀 기울이는 의미있는 교훈을 얻어야 옳고 교회는 배타성 보단 포용의 길로 가는 것이 바른 길이다. 내 주장과 틀리면 불법ㆍ불순세력, 내 믿음과 다르면 사탄과 마귀로 상대를 규정한다면 그런 국가가 어찌 민주 국가이며 신성의 종교일까. 또한 국민들로부터 어찌 신뢰를 얻고 소통을 바랄까. 祭政, 신뢰회복하고 배타성 버려야 9월 위기설로 인한 설마(舌魔)의 피해가 무려 100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지난주말 언론에 보도됐다. 경제도 신뢰가 그 바탕이다. 국가의 진정한 성장을 위해서도 실천 못할 말 만을 앞세우는 타성을 넘어 대통령부터 신뢰를 회복해 나갈 일이다. 또한 종교계는 그런 대통령이 운신의 폭을 넓히도록 정치로부터 한발 물러나 상대편 손을 맞 잡는 행동으로 속세를 향한 무언(無言)의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 이 시대 꽉 막힌 소통의 벽을 가장 먼저 허물어야 할 측이 바로 집권 강경 세력과 일부 교단에 있다는 주장이 불순하고 사탄의 목소리로 몰린다 한들 거둬들일 수 없는 말이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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