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기술이전 외면속 “3년내 자신”/매출액 15% R&D투자… 최우량 기업/“종업원을 내 가족처럼”… 주택자금도 무이자 대출『한국반도체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장비국산화가 필수적입니다. 반도체 전공정장비의 국산화를 위해 지난 3년동안 외국선진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제휴를 모색했습니다. 그러나 3년동안 얻은 것이라면 선진국들은 절대 우리에게 핵심기술을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내손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불혹을 넘은 마흔셋에 사업에 손댔다 실패해 자살까지 생각하는 등 절망과 좌절에 빠졌다가 이제는 메모리칩검사기 등 반도체 후공정 장비부문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미래산업 정문술 사장(59)은 『노욕인지는 몰라도 선진국들이 장악하고 있는 반도체 전공정장비의 국산화를 기필코 이루겠다』고 말했다.
□대담:김희중 산업1부 기자
○초고속성장 질주
정사장은 『앞으로 3년정도 더 힘을 모으면 전공정장비도 어느정도 국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 83년 18년간의 공직생활을 청산한 후 반도체조립기구를 납품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이후 목돈이 생길 때마다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등 매년 매출액의 15%를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남다른 기술경영에 승부를 걸어 마침내 92년 반도체칩검사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검사기는 때마침 불어온 반도체호황과 맞물려 없어서 못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으며 그를 돈방석에 앉게 했다. 이 장비는 대당 가격이 1억5천만원으로 1억9천만원수준의 일제보다 싸 막대한 수입대체효과(국내수요 60%공급)를 거두고 있으며 일부는 세계굴지의 반도체업체인 미 TI사 등에 수출, 국제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미래산업은 정사장의 「기술옹고집」에 힘입어 불황을 모르며 초고속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매출액이 92년 32억원에서 93년 65억원, 94년 2백27억원, 95년 3백18억원, 96년 4백54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7백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외형이 무려 21.8배나 늘어난 것이다. 최근 반도체경기 둔화속에서도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어 생산라인을 3배이상 확장했다. 품질이나 성능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주문량이 밀려들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올해에만 능률협회와 대신경제연구소 등으로부터 최우량상장기업으로 선정될 정도로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래산업 정문술 사장을 천안산업단지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경영관, 인생관 등을 들어봤다.
미래산업이 최근 능률협회가 실시한 「상장사 우량도 조사결과」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최우량기업의 영예를 차지해 재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경영에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품질 기술 등에서 경쟁업체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최고수준을 확보하기위해 연구개발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품질이 뛰어나고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 수익 성장 안정성 등에서 별다른 걱정을 안해도 됩니다. 세계최고수준의 원천기술만 확보하고 있으면 아무리 불황이 닥쳐와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또 종업원을 내가족처럼 보살펴준 것도 생산성향상과 노사화합을 다지는 데 기여했습니다. 대기업보다 많은 월급을 주고, 1인당 최고 3천만원의 주택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주고 있는 것도 종업원들의 애사심을 갖게 하는 요인인 것같습니다. 사원본인이나 직계가족들이 수술을 할 경우 수술비도 전액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다른 기업에 비해 미래산업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매출액의 15%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무한경쟁시대에는 누가 핵심기술을 한발 앞서 개발하고, 경쟁력있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느냐에 기업운명이 걸려있습니다. 연구개발 분위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연구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연구비를 사후결제토록 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구원들이 신규기술 개발을 추진하다 실패해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습니다. 실패의 경험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딘가에 축적돼 무형자산으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 메이커로
미래산업의 앞으로의 경영전략이나 2천년대 청사진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습니까.
▲일본의 히타치 어드벤테스트 등 선진장비업체보다 더 우수한 세계적인 반도체장비메이커로 도약시킬 것입니다.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직 기술만으로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종업원들에게도 사장보다는 기술학교 교장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하곤 합니다. 또 전자화폐 암호해독기 액정디스플레이(LCD)검사기, 고도반도체 제조장치 등 첨단반도체관련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할 계획입니다.
사업에 손을 댄 지 14년만에 2천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보유한 거부로 변신했는데 과연 돈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4만원에 상장한 주식이 지금 20만원을 호가해 그런 계산이 나오지만 사실 개인재산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주식은 기술개발투자를 위한 재원일 뿐입니다. 개인재산을 굳이 말하라면 서울 원지동에 있는 집 한채와 시골에 있는 임야등 얼추 30억원 정도 됩니다.
미래산업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는데 이제 이룰만큼 이뤘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끔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늦깎이로 반도체분야에 진출해 이제 조그마한 기반을 확보했을 뿐입니다. 장비업계의 인적구성을 보면 아직 취약합니다. 이 분야의 인력을 양성해 한국반도체장비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초석이 될수 있도록 다져놓고 떠나겠습니다. 인력양성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산 대물림 없다
내년이면 회갑이신데 경영권은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요.
▲종업원중에서 다음 사장이 나올 것입니다. 저는 5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딸들은 모두 출가했고 큰 아들은 기계공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난해 결혼해 현대자동차 울산승용제1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의 성격을 살펴보니 경영인보다는 월급쟁이가 더 적성에 맞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미래산업에 입사시키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그래도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유산상속에 대해서는 이미 자식들과 합의했습니다. 유산을 물려주는 것은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독약을 주는 것입니다. 세습은 본인으로서도 불행한 일이지요. 그래서 아들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당부했습니다. 다행히 애비의 마음을 알아서인지 아들들도 재산에 별 미련이 없는 것 같더군요. 앞으로 노욕이 생겨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주식 등 미래산업을 경영해서 번 돈은 반도체장비 국산화를 위한 개발자금으로 쓰여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역정을 회상할 때 후회스러운 일도 적지 않을텐데요.
▲안정된 좋은 직장생활 18년동안 한 번도 즐기지 못했던게 아쉽습니다. (정사장은 국가안전기획부 과장으로 지내다 지난 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됐다.) 월급쟁이시절에는 상사와의 갈등, 승진등 지금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에 신경을 너무 쓴 나머지 즐겁게 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