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15일] 스튜어디스

1930년 5월15일 샌프란시스코발 시카고행 80-A여객기. 승객들의 눈이 커졌다. 똑같은 제복을 차려 입은 여성 8명이 탑승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스튜어디스인 이날의 여승무원들은 ‘오리지널 에이트(the Original Eight)’란 이름으로 항공사에 남아 있다. 유나이티드 항공의 전신인 보잉항공운수(BAT)사가 대공황의 와중에서도 여승무원 제도를 선보인 것은 철도와 경쟁을 위해서다. ‘덜컹거리는 비행기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이나 타는 위험한 운송수단’이라는 선입견을 부수자는 전략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승객의 반응이 좋았다. 스튜디어스는 불과 3년 만에 세계로 퍼졌다. 오늘날 전세계 스튜디어스와 스튜어드는 30만 명에 달한다. 여승무원 자격은 지금보다도 까다로웠다. 키 162㎝, 체중 52㎏ 이하, 25세 미만의 미혼 간호사만 가능했다. 신장을 제한한 것은 기내가 비좁았던 탓이다. 업무는 더 힘들었다. 기내서비스에서 연료주입, 수하물 운송, 청소까지 해냈다. 발권 업무와 조종사들을 도와 여객기를 격납고에 밀어넣는 일도 맡았다. 힘들어도 스튜디어스는 인기직업으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급여가 높았다. 초기 임금이 월 125달러.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1,435달러에 해당되는 돈이다. 비숙련노동자 임금상승률을 감안한 환산가치는 4,529달러에 이른다. 스튜디어스를 기획한 인물은 오리지널 에이트의 일원인 엘렌 처치. 조종사를 지원했으나 거부당하자 스튜디어스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자동차 사고 후유증으로 18개월 만에 스튜디어스의 날개를 접었지만 2차대전이 일어나자 항공의무대 간호장교로 참전, 수천명의 생명을 구해냈다. 아이오아주 크레스코시의 ‘엘렌 처지 공항’에 그 이름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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