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바둑]바둑영웅전 제1보

제2기 명인전 도전 7번기 제2국白 오타케 히데오 9단 黑 린하이펑 9단 1977년 9월 19일 도쿄 드디어 「죽림의 대결」 제1보(1∼10) 오타케는 제14기 명인전에서 명인 이시다를 풀세트 접전 끝에 4대3으로 꺾고 명인이 되었다. 만33세. 그의 기량이 마음껏 피어난 시기였다. 요미우리 신문이 주최하던 명인전은 그 이듬해부터 아사히 신문으로 넘어갔으나 명인의 타이틀은 그대로 인정되었다. 아사히 신문은 1976년도의 명인전을 제1기라 칭했다. 제1기 명인결정 7번기는 전례에 따라 도전기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도전자가 되어 올라온 사람은 전년도의 명인 이시다였으므로 리턴매치가 벌어졌는데 절호조의 오타케는 이시다를 4대1로 물리쳐 기염을 토했다. 제2기에 도전자가 된 사람은 린하이펑 9단이었다. 이미 명인을 7회나 역임한 린하이펑은 오타케에게 있어서 가장 거북한 존재였다. 기단의 선배들은 드디어 「죽림(竹林)의 대결」이 실현되었다고 하면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오타케가 린하이펑을 물리친다면 비로소 기단의 최강자로 인정받을 분위기였다. 7번기의 제1국에서 오타케는 필승의 흑번을 반집으로 져서 불길한 출발을 보였다. 그 이전까지의 양인 상대전적은 오타케의 10승15패였다. 제1국을 졌으므로 통산 전적은 10승16패. 제2국을 맞이하는 오타케의 심정은 비장했다. 그 비장한 심정이 기묘하게도 백2·4라는 극단적인 실리 취향을 들고 나오게 했다. 양상은 평소의 기풍과는 정반대로 전개되어 평소에는 실리를 몹시 추구하는 린하이펑은 세력을 펴고 오타케는 평소의 두터움 대신에 실리를 챙기고 보는 바둑이 되었다. 입회는 다카가와 9단. /노승일·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5/22 18:18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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