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대우사태 50일] 2. 채권단의 이기주의

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난 8월26일. 대우 12개 계열사는 순식간에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채권단은 우왕좌왕하며 서둘러 워크아웃을 확정지었다.대우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난 3월부터 정부의 각종 정책은 체계적인 위기대책(CONTIGENCY PLAN) 없는 임기응변의 연속이었다. 정부는 시장의 급격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강변하지만, 정책 실기(失機) 속에 대우의 몸체는 자꾸만 썩어갔다. 김우중(金宇中) 회장이 대우조선 매각 등 구조혁신방안을 발표하던 4월19일. 이헌재(李憲宰) 금감위원장은 『金회장이 큰 결단을 내렸다』『실현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대우 자체에서 위기를 해결할 것을 기대했다. 국민은 당연히 金회장과 李위원장의 「절묘한 호흡」에 안도했다. 불행히도 시장은 이를 믿지 않았다. 대우는 썩은 고기를 물어뜯는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채권단의 빚독촉에 녹아들었다. 6월 말부터는 3~5일 단위로 돌아오는 어음결제분만도 수조원으로 늘어났다. 이때도 정부는 「시장이 무서워」 워크아웃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놓은 해법은 10조원 규모의 담보를 미끼로 채권단에 4조원의 신규지원을 하라는 것이었다. 신규지원이 이뤄진 하루 대우는 1년여 만에 570억원의 자금이 남았으나 자금사정은 다음날 곧장 나빠지기 시작했다. 대우의 정상화를 목이 빠지게 기대하던 협력업체들은 고사돼갔다. 7월25일 金회장이 「정상화 후 명예퇴진」 의사를 밝혔을 때도 정부의 홍보열기는 계속됐다. 국민은 더이상 언론지상에 대우의 유동성 문제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만 바라보는 격이 됐다. 대우 계열의 워크아웃이 긴박하게 돌아가던 8월 하순. 정부에서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워크아웃을 당기라는 재경부와 청와대의 방침에 금감위는 실효성을 내세우며 조기 워크아웃 가능성을 사실상 부인했다. 국가의 운명을 두고도 정부는 지휘탑(CONTROL TOWER)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허둥댔다. 그리고 대우 12개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하던 8월26일.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은 전날 밤 금감위로 급하게 호출돼 워크아웃 방침을 들었고, 다음날 오전11시에는 저녁6시 채권단회의를 소집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불과 7시간 만에 준비를 마무리했다. 준비없는 워크아웃은 역시 달랐다. 이때부터 채권단의 이기심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채권단의 철저한 「수인(囚人)의 딜레마」 속에서 대우는 또다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은 1차 회의에서 난데없이 투신사 보증사채 이자를 유예한다는 표현을 썼다가 투신권의 강한 반발로 안건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결국 2차도 부결됐고, 정부는 난데없는 「사실상 은행관리」라는 표현을 써 채권단을 갈팡질망하게 만들었다. 이후 3차회의에서 투신사가 갖고 있는 대우 발행 담보 기업어음(CP)에 대한 미봉책을 내놓은 채 여론에 밀려 신규자금 지원결정을 내렸다. 사태의 근본해결없이 이뤄진 신규지원 결정은 정작 계열별 채권단회의에서 「기형화된 자금지원」으로 나타났고 채권단간 갈등의 불씨는 꺼질 줄을 모르고 있다. 결국 대우호는 몇개월 동안이나 이어진 정부의 일관성 없는 미봉책에 시간만 낭비한 채 망가졌고 채권단의 이기심 속에 아직도 불안한 미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김영기기자YG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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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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