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한국계 은행들이 미국 내 저소득층에게 총대출의 일정 비율 이상을 강제적으로 대출해야 하는 ‘저소득층 의무대출 비율’과 미국이 국내 은행의 기업신용평가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별도의 신용평가를 실시하도록 한 중복 신용평가 조항 등 미국 내 법규의 일괄철폐 방안을 우리 정부가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요구조항들 가운데 일부만 받아들여져도 우리 금융기관들의 미국 진출은 물론 한미 양국간의 금융거래 관행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최근 열린 제2차 한미 FTA 금융분과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전달한 은행ㆍ보험ㆍ증권 등 금융회사들의 16개 요구사항을 본지가 23일 입수한 결과 드러났다. 금융 분야 요구사항들이 외부에 세부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요구사항을 보면 은행 부문에서는 ‘지역사회 재투자(CRA)’라는 명목 아래 총자산 2억5,000만달러 이상(또는 총자산 10억달러 이상 지주회사의 자회사) 은행들이 총대출의 일정 비율 이상을 지역 내 저소득층(지역 중간소득 50%이하 소득계층)에게 대출하도록 돼 있는 내용을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지역사회 재투자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의무대출비율과 비슷한 형태이지만 우리처럼 ‘권고사항’이 아닌 ‘강제적인 법’으로 규정돼 위반시 훨씬 엄격한 벌칙이 부과된다“며 “지역 소외계층을 배려한다는 명목 아래 한국계 은행들에 대출 위험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또 미국 내 금융 주재원들에게 현행 3년인 주재원 비자(L1) 유효기간을 5년으로 연장하거나 투자비자(E2)로 발급해주도록 요청했다. 이밖에 외환위기를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에서 자금을 조달, 운용할 때 일정 비율을 미국 내에서 운용해야 하는 ‘자산운용 통제수단’과 6주가량 실시하는 임점 검사기간도 절반으로 단축해달라고 요청했다. 보험 부문에서는 미국 보험사에 비해 법정예치금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일이 FTA 협상원칙인 ‘내국민 대우’에 어긋나는 조치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국내 보험사들이 재보험을 취급할 경우 보험계약금의 100%에 대해 담보 또는 보증을 요구하는 조항도 바로잡아달라고 촉구했다. 증권과 세제 분야에서는 미 증권거래소(SEC) 등록절차를 개선하도록 하는 한편 국세청(IRS)에 현지 사무소 과세를 완화해달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은행ㆍ보험ㆍ증권 등 업계 요구사항을 전달함에 따라 오는 9월에 있을 3차 협상에서 관련 사항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