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영웅전 제5보쌍립을 끊은 이석홍
노국수들 가운데 노사초 못지 않게 많은 일화를 남긴 사람이 월성의 이석홍(李錫泓)이었다. 1896년에 태어나 1975년에 별세한 그는 부유한 양반집에 태어나 풍류호걸로 평생을 지냈다.
풍채가 뛰어나고 배짱도 좋았으며 장난꾼이기도 했던 그는 6.25 직전에 내무부장관을 지낸 김효석(金孝錫)과 친구였다. 김효석은 5점으로 이석홍과 작은 내기바둑을 자주 두었는데 그는 이석홍과 바둑을 둘 때면 세가지 적과 싸워야 했다.
첫째는 신출귀몰한 이석홍의 바둑 솜씨였고 둘째는 폭포 같은 입심이었고 셋째는 비상한 부정행위였다. 부정행위란 이석홍이 대세가 불리하면 곧잘 한꺼번에 돌 두 개를 놓는 것을 말함이었다.
이석홍이 쌍립을 끊은 얘기는 기단의 전설 가운데 하나였다. 3점 하수와 내기바둑이 벌어졌는데 일전일퇴를 거듭하는 사이에 밤을 꼬박 새우고 이틀째의 하오가 되었다. 어쩌다 이석홍의 대마가 잡혔다.
아무리 궁리해도 역전의 묘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석홍은 공전절후의 술책을 시도하기로 했다. 포위망의 쌍립을 끊겠다고 둔 것이었는데 자기의 백돌로 두지 않고 잡아서 따낸 흑돌로 두었다.
상대도 속이 검은 사람이었는지 「이 영감이 인젠 지치다 못해 흑백 구별도 못하는 군」하고 여기고 천연덕스럽게 다른 곳에 한 수를 두었다.
다음 순간 이석홍은『어허, 내가 백돌로 둔다는 게 그만 흑돌로 두는 실수를 했군』 하면서 그 흑돌을 백돌로 바꾸어놓고는 계속해서 한 수를 더 두어 쌍립을 끊어버렸다.
죽었던 백대마가 살아나면서 한 무더기의 흑을 도리어 잡게 된 것이었다. 상대가 펄펄 뛰었으나 이석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노승일·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7/25 19:01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