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1990년대 당시 조어(造語)).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니고 30대의 나이를 가진 세대. 1980년대 초 광주항쟁으로 독재정권에 피 흘리며 저항했고 대중적 확산을 통해 1987년 민주화를 이뤄낸 현 87체제의 주축 세대다. 굶주림과 폐허의 잔해 속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근대화 세대와 더불어 단군조선 이래 최대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한 또 하나의 핵심 세대다. 이들 세대는 피 끓는 청춘 시절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권위주의에 저항해 민주화를 이뤄 나름대로 희생하거나 나라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른 세대들도 모두 이에 공감하고 있을까. 오히려 매우 운이 좋고 혜택을 많이 받은 세대라는 얘기들이 요즘 들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입시지옥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졸업정원제, 본고사 폐지 등으로 대학에 쉽게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강의실보다는 거리에서 많이 지냈고 졸업 후에는 학과 사무실에 수북이 쌓인 추천서 중 골라서 취직할 수 있었던 세대다. 취직 후에는 대체로 10년 차 전후에 IMF를 만나 젊은 나이로 해고를 피해갈 수 있었으며 나이 들어서는 60세 정년 연장의 혜택까지 받고 있다는 얘기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신도시 아파트분양을 받아 자산을 불릴 기회도 얻었다고 한다. 물론 자녀를 교육시키고 부모를 부양하면서 자신의 노후까지 챙겨야 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볼멘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쉽게 묻히고 만다.
향후 40년간 한국 변화 주도할 세대
경제가 기로에 놓여지고 미래가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있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만 심화되면서 386세대 정치인들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중국의 거센 추격과 엔저를 통한 일본의 거센 반격으로 샌드위치 신세가 현실화하면서 올해 들어서는 경제의 주축인 삼성전자·현대자동차마저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4룡의 거센 추격에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맞았듯이 중국·인도 등의 거센 추격으로 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1조원 이상 상장사의 무려 23.6%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자보장배율 1미만의 기업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수익성은 외환위기 당시보다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취약해지며 좀비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빚더미에 내몰려 구제금융을 둘러싸고 혼란에 휩싸인 그리스나 남유럽 국가들이 남의 일이 아니다. 노동시장개혁, 공공 부문개혁, 규제개혁이 절실한 상황이다.
386세대는 대한민국 역사에 큰 에너지를 분출시킨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2010년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1960년대생 인구비중이 17%로 가장 많다. 1970년대생이 16.5%로 두 번째로 많고 다음 순으로 1980년대생 14%, 1990년대생 13.8%, 1950년대생이 12.8%라 386세대와 포스트 386세대가 향후 40년 동안 여전히 변화를 주도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386세대는 젊은 시절 애국심으로 뭉쳐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에 성공했다는 경험도 갖고 있다. 386세대는 경제계·법조계·공직사회 등 사회 저변에서 묵묵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추로 자라났다.
정치권의 386세대가 세계 조류에 걸맞은 새로운 비전으로 환골탈태한다면 이러한 동력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정권 창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의 386세대들이 변화하는 세계 조류를 제대로 읽고 개혁과 혁신에 앞장서야 한다. 분배 문제보다도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양극화 구조 자체를 허물어야 한다. 취업에 좌절한 대학생들이 민주노총을 찾아 벌이는 시위에 뭔가를 느껴야 한다.
민주화 이끌었듯 개혁·혁신 앞장을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을 물리치고 시장기능을 강화하는 하르츠 개혁을 성공시킨 독일 사회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에게서 배워야 한다. 최근 경제와 안보 이슈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만 아직 멀었다. 통일시대, 유라시아 시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도 가져야 한다. 사물인터넷(IoT)·3D프린터·빅데이터·인공지능·생명공학 등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에 386세대 정치인이 젊은 시절 목숨 걸었던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기를 기대한다.
/오현환 여론독자부장 hho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