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美 퇴직연금의 교훈

미국에서는 요즘 기업들의 퇴직연금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재계와 행정부가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재계는 노동비용 상승이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어 퇴직연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와 의회는 근로자들의 복지를 훼손할 수 없다며 퇴직연금제도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안변경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 퇴직연금제도를 꼼꼼히 살펴보면 기업들이 자신들의 재정부담을 근로자들에게 이전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 기업들은 회사가 퇴직연금 운용에 대해 책임을 지고 손실이 날 경우 회사자금으로 이를 충당하는 확정급여형(DB) 제도를 선호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연금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개인 근로자들이 부담하는 확정기여형(DC)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지난 85년의 경우 DB형이 퇴직연금시장의 66%를 차지했지만 이후 기업들이 재정부담을 우려해 DC형으로 바꾸거나 신규 기업들이 DC형을 채택하면서 지금은 DC형이 64%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실한 연금운용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고 추가 자금투입에 대한 부담도 없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의 경우 포천 1,000개 기업 중 71개 대기업이 자금부담을 이유로 전통적인 DB형 연금지급을 아예 중단했다. 휴렛패커드ㆍ시어스 등은 신입 직원에 대한 연금지급을 중단한다고 선언했으며 제너럴모터스(GM)ㆍ포드ㆍIBMㆍ노스웨스트 등 부실경영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의 연금미납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부실한 연금운용이 개별 기업은 물론 국민들의 세금까지 갉아먹고 있다. 물론 DC형 퇴직연금이 주식과 채권 등 금융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미국 금융시장의 저변을 튼튼하게 살찌우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실운용에 대한 문제점과 부작용이 나라 경제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퇴직연금 시대가 열렸다. 월가(街)의 대형 투자기관들은 벌써부터 한국도 DC형 제도를 채택해 자본시장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DC형에 몰리는 자금을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결국 퇴직연금에 대한 책임은 개인 근로자들이 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퇴직연금 형태와 자산운용회사 선정 등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은 개인들이 내릴 수밖에 없다. 미국 직장인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수년간 연금 수익률이 오히려 떨어졌다며 이제는 손을 놓고 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자신이 매니지먼트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직장인들도 퇴직연금을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 즉 일종의 회사로 생각하고 최고경영자(CEO) 입장에서 펀드운용 결정과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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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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