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이 갚아야 할 돈이 내년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돼 현재 진행 중인 유럽 재정위기가 내년에 더욱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유럽연합(EU)은 오는 16ㆍ17일 정상회의를 개최, 항구적인 구제금융 기구의 설립을 위해 EU 헌법(리스본 조약)을 수정하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독일이 기존 입장과는 달리 유로존 안정을 위해 경제통합을 심화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내비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내년 사상 최대 채권만기 도래=1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니크레디트의 집계를 인용, 유로존 회원국들이 내년에 차환 또는 상환해야 하는 자금이 지난 1999년 유로존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인 총 5,600억 유로에 달할 것이라며 이 같이 보도했다. 이는 올해에 비해 450억유로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특히 내년 중반까지 200억유로를 차환해야 하는 포르투갈이 현재로선 가장 위험하다고 FT는 지적했다. 아일랜드에 이어 포르투갈에 대한 구제금융설이 공공연히 나오는 까닭이다.
유로존의 재정위험 국가들이 자금조달에 난항인 것은 이들 국가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도가 너무 커지면서 민간 투자자들이 더 이상 국채를 매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FT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향후 5년 내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을 50% 이상으로 본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의 경우도 30%를 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5월 그리스 재정위기 이후 지금까지 700억유로 규모의 유로존 회원국 국채들을 매입했지만 이 정도로는 역부족인 것으로 분석된다.
베어링 애셋 매니지먼트의 앨런 와일드 채권 및 통화부문 대표는 "신흥국가들의 국채가 더 안전하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은 더 이상 유로존 재정위험 국가들에 투자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유니크레디트는 유로존에서 전통적으로 국채발행이 가장 활발한 내년 1월에 투자자들이 재정위험 국가들의 국채에 대한 투매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리스본 조약 수정=EU는 오는 16일~17일(현지시간)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기존의 유로재정안정기금(EFSF) 등을 대체하는 유로안정화기구(ESM)를 설립하기 위해 EU의 헌법인 리스본 조약을 고치는 데 합의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이 공식성명의 초안을 입수해 보도했다. 구제금융 기구를 현재의 한시적 형태에서 항구적으로 바꾸려면 회원국 간의 구제금융을 금지한 리스본 조약의 수정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EU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ESM의 공식 출범을 발표할 지도 주목된다.
성명 초안에 따르면 EU는 현행 리스본 조약에 ESM 설립의 근거를 추가하는 방법으로 조약 수정안을 도출하기로 했다. ESM은 채무조정 때 민간 투자자들의 예외없는 손실부담 원칙(베일인ㆍbail-in) 등을 담고 있으며 기존의 구제금융 기금들보다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독일은 당초 구제금융 기금의 확장에 대해 "EU 헌법의 수정을 필요로 한다"며 반대해왔지만 이른바 베일인 조항이 도입되면서 ESM 창설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재정통합에 전향적 자세=독일 정부가 위기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13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유로존을 지키기 위해 회원국들과 더욱 깊은 차원의 경제적 통합 등 대담한 조치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독일 정부가 그간 유로본드 발행 및 ECB의 국채 매입 등 유로존 위기의 안정화 대책들에 줄곧 반대해온 점을 감안하면 큰 입장 변화로 읽힌다.
쇼이블레 장관은 특히 "위기를 종식하려는 유로존의 시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독일은 (유로존이) 재정동맹(fiscal union)으로 가기 위한 조치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의 개혁작업이 유로존 위기를 끝내는데 충분한지 판단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며 "지금 더 많은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