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한가위에 생각하는 미풍양속

황원갑 <소설가·한국풍류사연구회장>

세월의 흐름은 어김없다. 무덥던 여름이 가니 가을이 오고 어느새 추석이다. 설ㆍ단오와 함께 한민족 3대 명절로 꼽히는 추석은 신라 때 시작된 가배(嘉俳)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9년(서기 32)조에 이렇게 나온다. ’왕이 이미 6부를 정하자 이를 반씩 나누어 두 편을 만들어 왕녀 두 사람에게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을 만들었다. 가을 7월16일부터 날마다 새벽부터 큰 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다가 밤늦게 파하고 8월15일에 이르러 그 결과가 많고 적음에 따라 진 편에서는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 대접했다. 이에 온갖 노래와 춤과 놀이가 벌어졌는데 이를 가배라고 했다. ‘ 가배는 가위와 같은 말로서 곧 한달의 가운데(보름)를 뜻한다. 여기에 ‘큰’의 동의어 한이 붙어 한가위가 된 것이다. 빈부差로 명절모습도 양극화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이날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베풀고 사냥과 풍악을 즐겼다고 하니 한가위는 우리 민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풍양속이었다. 우리 겨레는 이처럼 이미 오랜 옛날부터 가을걷이가 끝나면 햅쌀밥과 햇과일 등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올리고 한자리에 모여 오곡백과 풍성한 한해의 수확을 축하하는 흥겨운 잔치판을 벌여왔던 것이다. 한가위에 선조들의 산소를 찾아 성묘하고 조상들에게 올린 술과 음식으로 음복(飮福)하는 조상숭배와 가족사랑의 이런 아름다운 풍속을 지키고자 우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민족대이동’을 벌이고 있다. 올 추석 사흘 연휴는 귀성ㆍ귀갓길이 여느 해보다 한결 숨가쁠 듯하다. 그런데 귀성ㆍ귀가의 번잡함보다도 해가 갈수록 한가위의 풍속도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그 원인으로는 무엇보다도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익빈부익부 현상, 그리고 가장(家長)의 권위추락과 대가족제도의 해체 등을 들 수 있겠다. 빈부격차에 따른 명절의 명암은 올 추석도 다름없다. 정신보다도 물질적 여유가 많은 사람 대다수가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사들이 내놓은 추석연휴 3박4일의 동남아여행상품이 1주일 전에 매진됐고 그 지역 항공권도 모두 팔렸다고 한다. 줄잡아 올 추석연휴에 16만3,000여명이 조상의 산소를 외면한 채 외국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반면 국내에 남아 있으면서도 차례와 성묘를 엄두도 못 내는 불우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당장 끼니 잇기가 급해서 성묘는커녕 차례상을 차릴 돈도 없기 때문이다.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전기료를 못 내 촛불을 켜고, 장기(臟器)라도 팔아야 할 정도로 사정이 딱한 극빈층…. 그날그날 생계가 아니라 생존 자체가 다급한 이들에게 추석은 결코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한층 더 서러운 날에 불과하다. 이들의 가슴속에 밝은 추석달은 언제쯤 뜨려나. 각자의 형편과 사정은 어쨌거나 아무리 세태가 변해도 조상전래의 미풍양속을 저버려서는 안되겠다. 올 추석도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하고, 어른들을 공경하며, 가족애를 다지는 계기가 돼야겠다.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세태가 변해도 인간의 가치기준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단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이 아니라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부부간에 화목해야 한다. 사람이 아무리 높은 벼슬을 하고 돈을 많이 벌었다 해도 부모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 부모가 늙고 병들고 돈 없다고 해서 냉대하거나 구박하지 말라. 낳고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는 자식이 금수보다 무엇이 나으랴. 우리 주변엔 늙고 병든 부모를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악쓰며 싸우는 짐승보다 못한 형제자매가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는 재산을 두고 부모ㆍ자식간, 형제간의 송사가 빈번한 것이 말세 같은 요즈음 세태다. 효도·가족애는 잊지 말아야 효도에는 아들ㆍ딸, 맏이와 막내, 또한 친부모ㆍ처부모ㆍ시부모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큰아들ㆍ작은아들ㆍ큰며느리ㆍ작은며느리ㆍ큰사위ㆍ작은사위 할 것 없이 모두가 같은 자식이다. 하늘 같은 부모의 은덕을 효성으로 갚지는 못할망정 패륜으로 되갚아서야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랴. 올 추석에는 모두가 밝고 둥근 달을 쳐다보며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 지극한 효성과 우애와 가족애를 다지는 명절이 됐으면 좋겠다. 혹시 먹구름 때문에 광명한 보름달을 볼 수 없다면 마음의 눈으로 가슴에 뜬 만월이라도 바라보며 한가위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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