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3일 재개관 단성사 이성호 사장

"새단장 극장서 '영화의 뿌리' 지킬것"

이성호(50) 단성사 사장

“단성사는 단순한 극장이 아닌 우리 영화의 역사적 유산이자 자산입니다. 더 좋은 극장들이 생겨도 단성사의 역사만큼은 영원한 자랑거리지요.” 3년7개월간의 공사 끝에 3일 재개관을 앞둔 이성호(50) 단성사 사장의 마음은 요즘 어린애 같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말끔히 새 단장을 한 만큼 최첨단 극장시설을 자랑할 법도 하지만 이 사장이 가장 먼저 보여준 곳은 벽에 새겨진 ‘한국 영화를 빛낸 100인’ 현판이었다. 입구에 내걸린 춘사 나운규의 사진을 비롯해 해방 전후의 영화 광고들과 포스터들이 곳곳에 들어찬 모습은 흡사 영화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지난 1907년에 문을 연 단성사의 역사는 곧 한국 영화의 역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1919년)를 제작ㆍ상영했고 춘사의 ‘아리랑’도 단성사 스크린에 올려진 작품이다. 한국의 흥행 역사를 써 나갔던 ‘겨울여자’(1977년), ‘장군의 아들’(1990년), ‘서편제’(1993년)도 모두 단성사 단관 개봉작이다. “종로에서 지하철 공사가 한창일 때는 건물이 기울어 빔을 받쳐놓고 손님을 받기도 했어요. ‘장군의 아들’이나 ‘서편제’가 개봉하면서는 밀려드는 관객에 극장 현관문이 다 부서지기도 했지요. 종로3가에서 2가에까지 늘어선 관객의 행렬은 보기만 해도 장관이었죠.” 이 사장 개인으로서도 재개관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해방 후 군납업으로 재미를 봤던 선친 이남규(94)옹이 62년 벽산그룹으로부터 극장을 인수하면서 영화업은 집안의 가업이 됐다. 그가 극장을 물려받은 때는 87년. 요즘 사람들이 ‘단성사’ 하면 떠올리는 영화들은 모두 그가 사장을 맡고 나서 개봉된 셈이다. “큰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고층 오피스텔을 올렸어야지. 경제 논리로 보면 여기에 극장을 짓는 것은 말이 안되죠. 장인정신이라고까지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그래도 영화의 뿌리를 아끼는 마음으로 알아주시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4년여 만에 돌아온 영화판인 만큼 조금은 낯설다. 그는 “영화도 영화판도 너무 빨라졌다”고 말한다. “24살 때 본 ‘디어 헌터’는 그 감정이 너무 진해 사흘 동안 머리가 아팠었는데 요즘 영화들은 속도감이 너무 벅차 보는 순간 머리 속에서 다 날아가버려요. 세상이 변해도 보면서 음미할 만한 영화들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요. 극장은 영혼이 쉬어가는 곳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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