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신 중앙대 교수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걸맞게 우리 경제를 놓고 최근에 화려한 말들이 수놓아졌다. 시간적 순서에 관계없이 몇 가지만 소개해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이 0.5%에 그칠 것이라고 지난해말 전망했는데 최근에는 전망치를 4.5%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대부분의 국내외 연구기관도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4% 안팎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4분기에 경제가 4.6% 성장했다고 발표하였다. 지난해말 경기저점을 통과하여 급속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게 확인되는 대목이다.
미국의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개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가 이처럼 급속한 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평가하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즈워스 서울사무소장은 5월 초에 『한국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이 조만간 한계에 부딪칠 것이며 자칫하면 내년에 한국경제가 다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에 미셸 캉드쉬 총재는 한국경제가 위기를 극복했다고 평가하고 구조조정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지만 성공을 확신한다고 덕담을 늘어놓았다. OECD는 경제회복세가 견고해질 때까지 현재의 보조적인 거시 경제정책이 지속되면서 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가장 유려한 말은 강봉균(康奉均) 경제수석에게서 나왔다. 康수석은 우리 경제의 쟁점과 불안한 구석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교통정리」를 잘해주었다. 그리고 올 하반기부터 설비투자가 늘어나면서 경기회복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현재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구조조정에 중점을 둔 범위 내에서 취하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5% 수준 이상의 지속적인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이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수석의 발언은 정부의 경제관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우리 정부의 명쾌한 경제관과 자신있는 경제운용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경제를 보는 시각이 너무 단기적이고 안이하여 안타깝다.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구조조정을 1~2년 안에 끝마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5% 이상의 성장을 지속시키는 경제정책이 존재하는 양 생각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미국과 뉴질랜드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우리 경제가 역동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4~5년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 그전에 구조조정을 끝낸다고 생각하면 YS정부의 개혁처럼 피상적이고 사이비이기 쉽다. 이는 본격적인 개혁을 주저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경제를 두고두고 멍들게 한다.
구조전환기에 5% 이상의 성장을 지속시키는 환상적인 경제정책은 없다. 만약 있다면 왜 일본이, 예컨대 매년 2% 이상의 안정성장을 지속시키는 경제정책을 펴지 않겠는가. 구조개혁이 필요한 시기에 경기부양책은 경제를 일시적으로 회복시킬 뿐이다. 멕시코가 위기를 맞은 이듬해에 급속한 V자형의 회복세를 보였지만 후에 다시 준위기상황에 이른 것은 이 때문이다.
올해 우리 경제가 4~5%의 성장을 보이는 것은 물불을 안 가리는 정부의 확대정책과 지난해 6% 가까운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뒤의 기술적 반등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내년부터는 이 두가지가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결국 투자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구조개혁을 해야 할 재벌이 과거처럼 투자를 주도할 수 없다. 중소기업과 벤처산업이 공백을 곧 메울 능력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5%대 이상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것은 무리이다.
학계에서는 올해 초부터 경기부양보다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고해왔다. 이를 무시하고 정부와 IMF는 한통속이 되어 지나친 확대정책을 폈다. 그 결과 급속한 회복세를 보이는데 이는 마치 큰 수술을 받던 환자가 강정제를 먹고 정력을 뽐내는 꼴이다. 허세의 후유증이 겁나니까 도즈워스가 슬그머니 한발 빼면서 면피용으로 경고한 것이다.
경기회복과 구조조정을 동시에 추진하라는 OECD의 처방은 말이 쉽지 실제로는 냄비경제 체질을 만든다. 내년과 내후년에 2~3%의 성장을 보이기만 해도 좋다는 자세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낫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이 경제학의 제1원리이다.
3반세기여의 적폐와 낡은 제도를 개혁하면서 동시에 윗목까지도 뜨뜻하게 하겠다는 것은 제1원리를 무시하는 일이다. 이런 선무당의 정치논리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