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창씨창본과 카스트

권홍우 논설실장


한국인의 성씨(性氏)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강하게 부정할 때 '그렇다면 내가 성을 간다'는 표현을 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얼치기 경제이론을 내놓았다간 '족보에도 없는 경제학'이란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성씨 앞의 본관도 중국에서 시작됐으나 온 국민이 쓰는 나라는 한국과 북한뿐이다. 본관과 성씨에 대한 자부심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족보문화를 낳았다. 안동 권씨가 처음으로 성화보(1476년)를 간행한 이래 16세기부터는 유력가문들이 족보를 만들며 양반사회로 번졌다.


△문제는 한국의 족보는 신뢰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 조상을 빛내기 위해 허위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고 신분제도가 무너진 조선 후기부터는 상민과 천민들도 돈만 있으면 족보를 샀다. 대한제국의 모든 신민이 본관과 성을 갖게 된 1909년 민적법 시행 이후부터는 가짜 족보를 만들어주는 사업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분량은 적어도 정확한 서양 유력가의 가계도(family tree)와 반대다. 한국의 법정에서도 족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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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과 문중을 중시하는 문화와 달리 한국 성씨의 46%는 귀화성씨다. 중국과 일본·베트남·인도·아라비아·네덜란드에서 찾아온 귀화인들은 이 땅을 일구는데 크게 이바지했다.(박기현·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성씨). 다른 사람들끼리 이해하고 보듬어가며 피와 땀으로 지키고 얽혀온 언어·문화공동체가 바로 지금 한국이다. 애초의 우리에게는 외래 문물과 사람을 인정하고 흡수하는 고능력 유전인자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보다 조금 늦게 한국에 찾아온 귀화인들의 창씨창본이 한 달 평균 600건에 이른다고 한다. 귀화인들이 뿌리를 내려 이 사회가 다양하게 발전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다문화가족 아이들의 교육여건이 걱정이다. 부모 한쪽의 한국어 어휘력 부족과 사교육비를 감당할 재정 능력이 처지는 탓에 아이들의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단다. 자식이 부모의 직업을 대물림하는 카스트 사회의 하부를 이들이 맡게 될까 두렵다. 새롭게 등장하는 성씨의 신귀화인들이 사회의 주류로 당당하게 자리 잡기 바란다. 구귀화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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