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실정리의 부실우려(사설)

정부가 은행부실채권과 부실기업 정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재정경제원이 내놓은 금융기관 부실채권 정리와 부실징후 기업의 자구노력 및 정상화 지원 전담기구 설치 방안은 기업과 은행의 부실고리를 차단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하고 있다.따라서 이 방안은 두가지 효과를 겨냥하고 있다. 하나는 진로그룹의 부도위기를 계기로 탄생한 부도 방지협약의 속편으로서 앞으로 발동할 금융기관개편등 금융개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다. 또 하나는 부실징후 기업에 대한 종합적인 기업클리닉과 대기업그룹의 부실계열사 정리를 통해 산업구조 조정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는 신 산업정책, 신 재벌정책의 의미도 함축한다. 날이 갈수록 부풀어 오르는 금융기관 부실채권이 금융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금융산업이 전면개방된다. 곪은 부분을 수술하고 개혁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대기업 또한 은행 여신에 의존해 경영을 해오면서 문어발 확장을 거듭함으로써 부실계열사를 끌어안고 주체를 못하고 있다. 계열사의 부실은 그룹전체의 부실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상태로는 외국 거대자본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부실 계열사를 살리든지 죽이든지 정리해서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개방시대를 맞아 개방시대에 쌓인 기업과 금융의 거품을 걷어 내려는 고육책이다. 한번은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더 늦출수도 없는 수술이다. 문제는 수술의 수단과 방법이다. 부실채권정리와 기업회생지원을 전담할 성업공사가 이 부작용이 많은 큰 일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부실채권 정리기금 1조5천억원은 너무 빈약하다. 재원 마련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은행 부실채권 11조8천억원을 소화해내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같으면 몰라도 지금은 경기가 침체되어 있어 팔리지도 않을 뿐더러 제가격도 받기 어렵다. 더욱이 담보부동산이 덩치가 크고 악성이 대부분이다. 잘 팔리고 제값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은행이 매각손실을 보면서 굳이 성업공사에 넘길 이유가 없을 것이다. 부동산이 안팔리면 은행부실이 성업공사 부실로 이전되는 것일 뿐이다. 성업공사의 부실은 정부 재정부담으로 넘어가고 끝내는 국민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일본의 경우도 거품이 꺼지면서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부실징후 기업의 판정기준도 분명치 않아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높다. 성업공사가 기업 병원기능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주관적 판단의 함정이 도사려 있다. 조금만 지원하면 회생할 기업에 부실징후 판정을 해서 오히려 죽일 수 있고 반대로 퇴출해야 마땅할 기업을 살리기 위해 무리수를 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오판과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특혜시비가 일어날 소지가 있다. 정부는 금융기관 자율을 강조하지만 정부의 간섭 입김이나 원격조종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실질적으로 자율에 맡겨 시장경제 원리를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시적 기구인 만큼 속결이 중요하다. 어렵고 부작용이 많은 일일수록 늦추면 탈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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