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바둑] 프로기사도 초읽기엔 '장사' 없다

프로기사들도 수읽기 삼매경에 빠졌다가 종종 시간패를 당한다. 그러나 유창혁같은 정상급 기사에겐 드문 일. 유창혁은 이날 대국에서 초반부터 과감한 세력작전을 구사하면서 전투를 유도하는 듯하더니 계시원의 『여덟, 아홉, 열』하는 소리에도 돌을 반상에 떨구지를 못했다. 겨우 포석이 끝난지라 복잡한 전투가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어이없는 패배를 당한 유창혁. 대국이 끝난 뒤 『초읽기가 2개 남은 줄 알고 착각했다』고 한다.판정시비가 끊이지 않는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바둑에는 반칙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시간패, 순번위반(연속해서 2번두기), 「낚시질」이라 불리는 한번 둔 바둑돌 다시 들어내기 정도이다. 아마추어에게나 일어날 법한 에피소드이지만 프로도 가끔 이런 일을 저지른다. 이중에서도 초읽기에 얽힌 재미있는 대국분쟁들을 알아보자. 『저승사자가 걸어오는 것같다.』 1시간을 고민해도 모자라는 복잡한 수읽기가 걸려있는데 초읽기에 들어가면 프로들은 「피가 마른다」고 탄식한다. 다 이겨 놓은 바둑이 역전되고, 자신도 모르는 반칙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80년 제5기 일본 명인전 도전4국 때의 일이다. 조치훈8단은 오다케 히데오(大竹英雄) 명인을 맞아 종반 승부가 걸린 치열한 패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막판 1분 초읽기에 들어가자 조치훈은 깜짝 놀라 기록자에게 자신이 패를 딸 차례냐고 물었다. 기록자는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했고 조치훈은 팻감도 쓰지 않고 바로 패를 따버렸다. 결국 반칙패로 몰린 조치훈. 그는 기록자의 실수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대국은 당연히 중단됐고 입회인은 무승부로 처리하고 말았다. 결승전에서 초읽기 착각이 벌어진 것은 국내에도 있었다. 김희중7단이 조훈현9단에게 실격패한 97년 KBS바둑왕전 최종국이 바로 그것. 김희중은 본격 기전에서 8분(자신의 소비시간)만에 상대를 제압해 이 부문 신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속기의 달인」. 그가 시간패로 우승을 헌납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초읽기에 들어가면 계시원들도 초조하다고 말한다. 『여덟』하는데도 대국 당사자가 착점을 하지 않으면 애가 타서 『아홉』은 머뭇거리면서 길게 늘이게 된다고 하소연한다. 98년 제3회 삼성화재배 때는 호방한 성격의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9단마저 계시원이 한국인 기사에겐 관대하면서 자신의 초읽기는 초스피드로 읽는다면서 항의한 적도 있다. 만일 해당 기사가 대국시간에 지각을 하면 떻게 될까. 보통 늦은 시간의 2배를 초읽기 시간에서 공제한다. 84년 제24기 최고위전 도전자결정전 때이다. 오전11시가 넘어서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패를 당한 서봉수8단. 입맛을 다시던 그는 「시간을 아끼자」면서 상대인 노영하7단에게 제2국을 제의했다. 이로써 한국바둑 사상최초로 하루동안 두판 연속으로 도전자결정전이 치러졌는데 이번에는 서봉수의 승리. 이밖에도 시간에 쫓기면 별 일이 다 벌어진다. 89년 KBS바둑왕전에서 김수장7단은 살아있는 바둑돌을 들어내고도 승리를 낚아챘다. 상대인 서능욱8단이나 해설자인 노영하7단도 눈치를 못채는 바람에 김수장의 최종승리. 한편 임선근9단은 죽은 돌을 들어내지 않아 대국분쟁이 일어나기 했다. 최형욱 기자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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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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