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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세종시점 개점 늦춰져
고양 롯데빅마켓·롯데몰 수원점. "위자료로 집집마다 에어컨 설치"
"상생발전 기금으로 500억 내라" 터무니없는 요구에 '진땀' 흘려
오픈 지연땐 납품업체도 피해 "법규 정비 진정한 상생 이뤄야"
지난 6일 홈플러스는 세종신도시점 개점을 돌연 연기했다. 지역상인 단체를 표방한 세종시서남부수퍼마켓협동조합이 생존권 위협을 주장하며 중소기업청에 사업 조정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2010년 10월에 세종시로부터 용지를 매입하고 허가까지 받았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세종시는 계획도시여서 대형마트 개점에 따른 재래시장의 타격이 사실상 미미하지만 조합측의 반대 의사가 강해 일단 개점을 연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신규 점포 개점을 앞둔 유통업계가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지역 상인과 주민의 떼쓰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역상권 보호를 우선하는 현행 법규에서는 유통업체가 약자라서 점포 개점을 위해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요구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일단 수용의 저자세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자체는 지역 여론을 의식해 사실상 이를 방관하고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세종시 어진동에 들어서는 홈플러스 세종신도시점은 편의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세종시의 첫 대형마트라는 점에서 지역 주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대형마트가 들어올 경우 문화센터는 물론 다양한 외식업체, 부대시설 등도 함께 들어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홈플러스 개점은 중소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전격 연기됐고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주말 내내 해당 조합을 성토하는 비난 글이 잇따랐다.
회원수가 4만명이 넘는 세종시 지역 친목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애초에 세종시에는 재래시장이 없는데 누구를 위해 대형마트 입점을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외부인이 금전적 이익을 노리고 조합을 급하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은 "대형마트에 오후 8시까지만 영업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중소 상인들 입장도 이해되지만 요구가 지나치다"고 말했다. 일부 세종시 주민들은 중소기업청과 세종시 등에 홈플러스 개점 지연에 대한 항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홈플러스 입점을 저지한 조합은 당초 홈플러스에 상생발전기금 명목으로 10억원 이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그간 합의점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나중에는 조합이 협상을 거부하고 일방적인 요구사항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세종신도시점 개점을 조속히 요구하는 입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르면 13일 개점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에 롯데 빅마켓 킨텍스점을 연 롯데마트도 개점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흰색으로 칠한 점포 건물의 외관이 '정신병원을 연상시킨다'는 주민들의 항의에 외관을 급하게 변경하느라 자칫 개점이 연기될 뻔 한 것이다. 빅마켓 킨텍스점과 마주한 아파트 주민들은 롯데마트에 정신적 위자료 명목으로 각 가정에 에어컨을 설치해달라는 요구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마트는 아파트 놀이터와 경로당의 시설을 확충해주겠다는 내용의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주민들과의 협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롯데몰 수원점 개점도 당초 지난 8월에서 3개월 지난 이달 20일로 연기됐다. 수원시상인연합회가 상생발전기금 명목으로 500억원을 요구하면서 개장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결국 양측은 3개월 이상 협상을 벌인 끝에 롯데그룹이 140억원을 출연하고 수원시가 30억원을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롯데몰 수원점 개점을 목전에 두고 수원지역 극장 관계자들이 롯데몰 내 롯데시네마 오픈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또다른 난제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롯데몰 수원점 인근에서는 신규 호텔인 노보텔 앰배서더 수원 신축을 두고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분진·소음 관련 민원을 제기하면서 시행사인 AK네트워크와 시공사인 한진중공업이 협상에 나서야 했다. 민원을 제기한 아파트 단지와 신축 호텔 간 거리는 200m가 넘어 소음·분진 관련 법적 마찰이 있을 수 없지만 시행사와 시공사 측은 아파트 조경 시설 지원 등의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중이다.
이처럼 유통업계가 지역 주민과 상인의 과도한 보상안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시장 포화와 정부 규제로 사실상 출점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요구를 제시하더라도 신규점 개설이 급하다보니 적당히 타협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통시장과 지역상권을 보호하는 것 못지 않게 점포 오픈과 관련해서도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개점이 지연되면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해당 점포에 입점하는 점포주와 상품을 공급하는 납품업체의 피해도 고스란히 불어날 수 밖에 없어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 유통업체를 규제하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의 맹점을 이용해 일부 주민과 상인들이 납득할 수 없는 보상안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역상권을 보호하고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관련 법규를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