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스톡&스토리] 증권구락부

국내 증권업 면허 제1호 대한증권주식회사의 증권업 허가증.


1947년 9월. 서울 남대문로 2가 지요다빌딩(현 하나은행 명동영업부) 지하 식당에 40여명이 모였다. 이날의 역사적인 모임은 대한민국 증권시장의 첫 발자국이 됐다. 바로 '한국증권구락부'가 결성된 날이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후 한반도에 광명이 찾아왔으나 증권시장은 오히려 끝없는 암흑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미군정청의 아처 엘 러치 장군이 군정명령 제43호를 발효시켜 1920년 세워진 '조선증권취인소'를 폐쇄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증권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서울의 명동 부근에 모여 내국인 소유 주식뿐 아니라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귀속기업체 주식을 수집하고 상호 간에 매매도 하면서 증권시장의 부활을 위해 노력했다.


우선 서양인들의 친목단체인 '제물포구락부'를 모방해 국내 최초의 증권단체인 '증권구락부'가 결성됐다. 초대 이사장은 조선증권취인소 취인원 출신의 송대순씨가 맡았다. 송씨는 최초의 증권회사 설립을 추진했고 그 결과 1949년 11월22일 자본금 2,000만원의 대한민국 1호 증권사인 대한증권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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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인 1952년 면허 제2호의 고려증권이 설립된 것을 비롯해 이듬해 영남증권, 국제증권, 동양증권이 차례로 설립됐다. 대한증권을 비롯한 5개 증권사들은 본격적인 영업활동을 위한 증권시장의 필요성을 깨닫고 증권협회 구성을 추진했다.

1953년 11월25일 대한증권 사옥 2층에서 사단법인 대한증권업협회(현 금융투자협회)의 창립총회가 열렸고 이후 16개 증권사의 점두거래는 협회 주관의 '증권매매회합'에서 이뤄졌다.

증협 설립 이후 증권회사가 급속히 늘어나고 거래도 활발해지자 대한증권과 증협은 정부에 증권시장의 설립을 꾸준히 건의했고 마침내 1956년 3월3일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송씨의 대한증권은 증권거래소 거래원 1호로 등록됐고 이후 1962년 신규로 제정된 '증권거래법'에 따라 재무부로부터 국내 1호로 증권업 허가를 받았다. 대한증권은 1994년 교보생명으로 경영권이 이전되면서 상호가 교보증권으로 바뀌었고 증권시장의 초석을 다진 산 증인으로 현재도 여전히 한국 증권시장을 이끌고 있다.

한국증권시장의 태동은 하나의 드라마와도 같다. 최근 2년여간 증권 거래대금 급감으로 인한 실적 악화로 증권업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위기 때마다 증권업계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60년 전의 '증권 1세대'가 보여줬던 것처럼 지금은 위기를 기회로 삼는 현명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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