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버핏의 주총

“당신 자회사가 클래매스강 유역에 댐을 건설하면서 생계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댐을 없애주시죠.” “지금 연방정부에서 검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결정에 따를 것입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일 정례 주총장에서 한 여성 주주에게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주주가 “가족계획단체나 낙태 찬성 단체에 기부할 생각은 없냐”고 질문하자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단호히 거절한 후 “내가 당신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만큼 당신도 내 생각을 존중해달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전 세계가 존경하고 40조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세계 2위의 부자로 한껏 위세도 부릴 수 있는 버핏이다. 하지만 주총장에서의 버핏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형식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했고 그 의지도 분명히 했다. 주주의 질문에 하나하나 또렷이 답했다. 이날 주주와의 대화는 무려 5시간 동안 계속됐다. 버핏의 나이는 76세, 같이 자리한 찰스 멍거 부회장의 나이는 무려 83세다. 계속된 대화는 고령의 그들에게도 벅찼을 것이다. 그럼에도 버핏과 멍거 부회장은 자리를 거의 뜨지 않았다고 한다. 대화가 끝난 뒤에는 바비큐 파티와 카드게임, 춤과 공연이 이어졌다. 물론 버핏도 함께했다. 그는 축제가 계속되는 동안 항상 주주들과 함께 있었다. 버크셔의 주주총회는 그렇게 끝났다.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고함을 치는 주주도 없었고 발언을 막기 위해 ‘힘 좋은’ 경호 요원들이 주주에게 달려드는 일도 없었다. 사회자가 서둘러 주총 폐막을 선언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버핏은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버핏을 ‘가치투자의 귀재’로만 알 뿐 ‘오마하의 현인’인 것은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버크셔의 주총을 보면서 문득 드는 또 다른 생각 하나. 우리나라 대기업의 주주총회 현장에서 ‘회장님’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주주들이 질문하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대답하고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 소견을 밝히는 그런 주총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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