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4일] 엘제비어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판형에 낮은 가격. 루이스 엘제비어(Louis Elzeveir)가 찍어낸 책들의 특징이다. 가죽으로 감싼 호화판 양장본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 엘제비어의 저가 서적은 큰 인기를 끌었다. 엘제비어의 주고객은 대학생. 네덜란드의 유명한 대학도시인 레이던에서 1580년부터 인쇄업을 시작한 그는 학생들이 적은 돈으로 사볼 수 있는 고전서적 발간에 중점을 뒀다. 종이 가격이 책값을 좌우하던 시대에 그는 판형을 줄이고 이윤도 최소한으로 붙였다. 오늘날 문고판의 원조격이다. 유럽에서 호평 받은 엘제비어판은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 전세계로 퍼졌다. 서인도제도의 사탕수수밭에서 뉴암스테르담(뉴욕)과 자카르타ㆍ일본까지 네덜란드인들이 진출한 곳이면 어디든 그가 펴낸 책이 있었다. 지구촌 전역에 깔린 최초의 지식상품으로 엘제비어의 서적을 꼽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엘제비어는 1617년 2월4일 사망했지만 사업은 더욱 커졌다. 다섯 명의 아들들이 네덜란드 주요 도시에 인쇄소를 차리고 고전과 과학서적을 주로 찍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 등의 학설을 책자로 소개한 것도 엘제비어다. 엘제비어 가문의 직영 인쇄그룹은 1791년까지 존속했다. 엘제비어그룹의 전성기는 네덜란드 황금시기(16~18세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엘제비어가 번창할 수 있었던 최대 요인은 자유. 저자와 출판ㆍ인쇄ㆍ판매업자에 대한 검열이 없다는 네덜란드의 정치적 자유가 양서를 쏟아냈던 배경이다. 엘제비어가 길을 튼 문고판 도서는 최근 다시 각광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고전 위주의 문고판이 새 책 판매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커피 한잔 값으로 좋은 책과 만날 수 있었던 옛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 문고판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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