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역할 못하는 경기 선행지수<br>선행지수 하락세 보여도 실제 경기는 오히려 상승<br>"원자재값 하루새 급변동 월간단위 지수는 무의미"<br>내년 3월까지 개선 추진… 단순 구성 지표 교체로<br>공신력 회복될지 미지수
| 지난해 선행종합지수가 줄곧 하락했지만 경기는 오히려 상승해 선행지표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난해 수출 증가세와 내수회복으로 6.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수출용 초대형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는 부산 북항 감만부두(왼쪽)와 쇼핑객들로 붐비는 서울 중심가의 대형 백화점. /서울경제DB |
|
지난 1월 현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두 달 연속 상승하자 시장 참가자들은 두 번 놀랐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상승국면을 유지하고 있는 데 놀랐고 지난해 하반기 경기선행지표가 현 경기확장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 또 한 번 놀랐다.
경기선행지수가 선행지수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선행지수가 보여준 추세라면 지난해부터 경기는 내리막길을 걸어야 하지만 결과는 상승세로 이어지며 '선행'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이미 시장에서 예측지표로서 경기선행지수를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3월까지 경기지표를 개편하겠다고 밝혔지만 단순히 구성지표를 바꾸는 것만으로 지표 설명력을 회복하기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측지표로서의 기능 상실한 '선행지수'=통계청은 매월 산업활동동향을 발표하면서 향후 3~4개월 뒤 경기국면을 예고하는 선행지수 전년동월비를 발표한다. 선행지수 전년동월비는 2009년 12월(12%)을 정점으로 지난해 12월(2.8%)까지 매월 떨어졌다. 지표대로라면 적어도 지난해 2ㆍ4분기부터 경기는 하락했어야 했다.
그러나 보여진 상황은 달랐다. 현 경기를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3월 100.3에서 7월 101.4까지 오히려 올랐고 11월 99.5까지 떨어지다가 2개월 연속 상승, 1월에는 100.9까지 올랐다.
수출 및 가계소득 등 실물 흐름은 물론 코스피지수 등 금융시장의 회복이 탄탄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1월 84.8%로 통계작성 이래 31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경기만 놓고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국면이다.
통계청은 선행지수 전년동월비가 말 그대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는 지표인 만큼 1년 전 지표가 비정상적일 경우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정규돈 통계청 경제통계국장은 "선행지수 전년동월비가 하락한 것은 지난해 경기가 가파르게 회복되면서 선행종합지수가 빠르게 증가한 데 따른 기저효과"라고 말했다. 지난 2년간 사실상 왜곡됐던 선행지표가 올해부터 향후 경기를 예고해주는 설명력을 회복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해외 선행지표도 경기 예측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는 2009년 12월(104.8)을 정점으로 지난해 9월(101.9)까지 9개월 연속 하락했다. 100 이상을 유지해 경기 회복추세는 이어지겠지만 그 폭은 둔화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국내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3ㆍ4분기 소폭 하락했을 뿐 이후 상승폭이 오히려 확대됐다.
◇내년 중 지표 개편…선행성 회복하나=현 선행종합지수는 재고순환지표ㆍ순상품교역조건ㆍ코스피지수ㆍ장단기금리차 등 총 10개 구성지표를 산술적으로 합산, 작성된다. 2006년 개편 이후 변동이 없다.
일각에서는 선행지수의 주요 구성지표들이 더 이상 경기 설명력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의 경우 당월 지표가 2개월 후에나 나와 해당 시점 조건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있지만 워낙 불규칙이 심해 향후 경기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장단기금리차도 하루단위로 변하는데 월간단위의 변동성은 별 의미를 보여주지 못한다.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하루단위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변하는 등 대외변수가 뒤죽박죽인 상황에서 월간단위로 발표되는 경기선행지수는 사실상 시장에서는 의미를 상실했다"고 꼬집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지표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통계청은 내년 3월까지 경기종합지수(동행지수ㆍ선행지수) 개선작업을 마치고 신(新)지수를 공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선행지수 자체에 대한 신용이 떨어진 상황에서 몇 개의 변수를 교체하는 지표 개선만으로 공신력을 회복할지는 미지수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경기선행지수와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를 1974년 이후 시계열 분석해보면 3개월 이상 선행지수가 하락한 사례는 총 26번. 이 가운데 실제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든 경우는 9번에 불과했고 나머지 17번은 오히려 상승했다. 단순한 지표 개선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진단하는 경기지수 전반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지 않는 한 '있으나마나'한 통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