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동십자각] 손벌리는 사회

지난 일요일의 일이다. 국내 굴지기업의 한 대리가 신문사로 상사인 부장의 상처(喪妻)부음기사를 꼭 내달라며 일곱번쯤 전화를 걸어왔다. 『팩스로 보냈으니 확인해 달라』 『내일 꼭 나오느냐』 등등 거듭거듭 확인했다. 한두번도 아니고 무려 일곱차례나 같은 전화를 받다보니 짜증이 났다. 喪妻한 일이 드러내 자랑할 일은 아닐터인데 부하직원을 시켜 신문에 꼭 실어달라고 한 저의(?)를 생각하니 더욱 화가 났다. 그 사람은 분명 부인의 죽음을 팔아 하청업체들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한 몫을 챙겼을 것이다.그러나 이런 일도 있었다. 기자가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임원 역시 상처를 했다. 그 분의 喪妻를 알고 부음을 싣기 위해 발인시간 등을 여쭸다. 그러나 그 분은 『부끄러우니 혼자만 알고 신문에는 내지 말아달라』고 한사코 부탁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집안의 대사(大事)가 아닐 수 없다. 관혼(冠婚)은 친지나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축제분위기속에 치르고, 상제(喪祭)는 집안사람들끼리 엄숙한 분위기속에 치르는게 상례다. 농경사회에서는 이 모든 행사가 잔치였다. 먹거리가 그리 흔하지 않았던 때라 이같은 행사에는 동네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판 축제를 벌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이런 축제가 치르는 사람이나 초대받는 사람,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주 주요 언론에는 어느 금융회사 최고경영진이 두 아들의 「도둑혼사」를 치렀다는 얘기가 「미담」으로 소개됐다. 그러나 그게 과연 미담이 될 수 있을까. 축제가 돼야 할 혼사를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는양 몇몇 사람에게만 알리고 몰래 치렀다니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이와는 반대로 중앙부처의 한 고위관리는 지방에 있는 관서에까지 자식의 혼인사실을 「통지」하는 일도 있었다. 한켠에서는 婚喪을 쉬쉬하고 또 다른 한켠에서는 이를 「공지」하는 이유는 뭘까. 「돈」때문이 아닌가 싶다. 남들 몰래 喪을 치르는 사람들은 들어오는 「부의금」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고 공지하는 사람은 부모나 자식을 팔아(?) 한몫 챙기려는게 분명하다. 물론 「그동안 나도 뿌려놓은 씨앗이 있으니 이제는 그 결실을 거둬야 한다」는 보상심리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청첩장이나 부고통지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회사원이든 공직자든 마찬가지다. 그리 많지 않은 봉급으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 부담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정부가 「옷사건」을 계기로 공직자들의 「맑은 행동」을 규범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맑은 행동을 강요하기 전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과거 여건을 개선하지 않고 법과 제도만을 강화할 경우 건네는 돈의 액수는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얻어 먹으려는」 국민의식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는한 「맑은 행동」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공직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모두의 정신이 맑아져야 한다. 「손벌리려는 」는 삼류의식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개혁과 일류 국가건설은 한낱 구호에 그칠 뿐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깨끗한 손」운동이 사회 곳곳에 고루 퍼져 관혼상제가 잔치로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JJ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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