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짝퉁'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
김미희기자 iciici@sed.co.kr
동대문시장ㆍ이태원 등에서 짝퉁이 점차 사라져가고는 있다지만 오히려 인터넷상에서는 더 늘어나고 있어 우려된다. 계속되는 단속에도 불구하고 짝퉁이 버젓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수요 있는 곳에 공급 있다’는 말처럼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건 호기심 때문이건, 또는 짝퉁으로라도 명품을 하나 갖고 싶다는 ‘가상적 만족감’ 때문이건 짝퉁에 대한 소비자들의 구매심리가 그 원인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짝퉁의 폐해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는가 의구심이 든다. 지난해 출간된 ‘위험한 가짜’(데이비드 홉킨스 외 지음)라는 책에 따르면 짝퉁의 유통이 단순히 금전적 손해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안전과 목숨까지 노릴지 모른다는 걱정에 오싹해진다. 지난 89년 노르웨이에서 출발해 북해 상공을 날던 콘베어580 여객기가 추락,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사고 원인은 규격에서 벗어난 가짜 부속을 사용해 비행기 꼬리가 잘려나간 탓이었다. 90년 아이티에서는 어린이 89명이 부동액이 섞인 엉터리 약을 복용하고 목숨을 잃었고, 96년 니제르에서는 불량 뇌막염 백신으로 예방접종을 받은 2,500여명이 숨졌다. 이쯤 되면 짝퉁은 저자의 표현대로 ‘테러’ 수준이다.
생명에 대한 위협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국가적 차원에서 짝퉁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주 현대ㆍ기아차의 자동차 제조 핵심기술을 중국에 넘긴 산업스파이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의 기술 유출에 따른 예상 손실액(세계시장 기준)은 22조3,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렇게 넘어간 기술로 만든 짝퉁 한국 자동차가 중국에 범람하지만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게 더욱 큰 문제다. 복잡한 현지법상 중국에서 소송해봐야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소송이 길어져 승소해봐야 이미 짝퉁 차는 다 팔린 뒤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명품 생산국인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 중이다. 한국을 ‘세계 5대 짝퉁 생산국’으로 지목한 EU와의 협상테이블에서 매번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단연 지적재산권 문제다.
짝퉁 문제를 우리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시작될 중국과의 FTA에서 국산을 베낀 중국산 짝퉁 자동차ㆍ가전ㆍ제과 등에 대해 우리도 할말이 없어진다. 짝퉁을 사지도, 만들지도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입력시간 : 2007/05/18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