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부총리의 메시지는 해외출장으로 자신이 없더라도 맡은 업무에 만전을 기하라는 당부로 일단 판단된다. 그럼에도 공약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치고는 너무 거창해 뜬금없기도 하거니와 듣기에도 거북스럽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국민경제와 나라곳간을 책임지는 경제부총리의 균형감각 상실과 한가한 현실인식이다. 135조원짜리 복지공약을 이행하느라 나라살림이 거덜날 판국에 공약가계부를 시무로 비유한 것이 적절한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부총리 말마따나 공약가계부가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의 과제가 아니라면 기초연금을 비롯한 핵심 복지공약이 줄줄이 후퇴한 이유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부총리가 기를 쓰고 모든 노인에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해야 하고 고교 무상교육 공약도 당장 내년 예산에 반영해야 마땅하지 않는가.
복지가 거스를 수 없는 주요 국정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재정이 감당할 만한 지출속도가 중요하거니와 우선순위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복지배분의 사회적 합의 역시 긴요한 과제다. 그럼에도 공약가계부는 정치공학의 산물인 대선공약을 그대로 베껴왔다. 공약가계부가 이제 와서 거센 논란에 휩싸인 것도 재원조달 방안과 우선순위 같은 중요한 선결과제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없었던 측면이 크다. 그런데도 올 4ㆍ4분기가 공약이행의 가장 중요한 시점이며 "골대 앞이라고 생각하고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라"고 채근한 대목에 이르면 국민과 기재부 직원이 아닌 청와대를 향한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현 부총리에게 발등의 불은 복지의 골을 넣는 것이 아니라 저성장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리더십 확립이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명제를 맞추기 위해서도 반듯한 성장궤도 진입은 더 없이 긴요한 과제다. 지금부터 내년 상반기까지는 경제운용 여하에 따라 저성장 늪에서 빠져나올지를 가르는 중차대한 시기다. 현 부총리는 올 여름 경질설이 불거졌을 때 외부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성과로 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성과가 고작 공약가계부 이륙이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세종시에 있을 것이 아니라 여의도를 기웃거리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