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먼이 약속장소로 가보니 웨일 회장과 존 리드 회장이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합병후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그를 반갑게 맞았으나, 끝무렵에 『일이 꼬이고 있다』며 무언가 다이먼의 결심을 요구했다. 한마디로 회사를 나가달라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10여일후 뉴욕 월가 최대 금융그룹의 후계자로 지목받던 다이먼은 경영권 헤게모니를 둘러싼 샌디 웨일과 존 리드의 고래싸움에 사임을 선택하고 말았다.혹평하는 사람들은 뉴욕 월가를 「카지노 자본주의」의 산실이며, 죽고 죽이는 서부 무법자의 세계와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돈놓고 돈먹기의 투기행위가 만연하고, 인간관계에 살벌한 정글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월가에는 많은 스타들이 있다. 시티그룹의 존 리드·샌디 웨일 회장,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월터 시플리 회장, JP 모건의 더글러스 워너 회장, 네이션스 뱅크의 휴 맥콜 회장, 메릴린치 증권의 데이빗 코만스키 회장 등은 대형 은행의 리더들이다. 투자펀드 쪽에는 버크셔 해서웨이사의 워렌 버핏 회장, 소로스 펀드의 조지 소로스, 타이거 펀드의 줄리안 로버트슨, 오메가 펀드의 레온 쿠퍼맨 등이 우뚝 서있다.
뉴욕 월가의 자본중 상당한 규모는 유럽에서 건너온 유태인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는 유태계 자본의 대부격이며, 버핏이나 소로스도 유태인이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 현 재무장관 등 세계 경제를 주물러온 거물들이 유태계라는 사실에서도 미국 금융시장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비판한 것처럼 유태인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사실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아랍계 자본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알왈리드 탈랄 사우디 아라비아 왕자로, 그는 시티은행이 파산 위기에 몰릴 때 선뜻 8억 달러를 투자한 바 있으며, 현재도 시티그룹의 대주주다.
미국 사회는 스타를 만들고, 스타를 따르고, 스타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다. 월가의 움직임은 스타 은행가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버핏이나 소로스가 어디에 투자했는지 여부가 월가 투자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월가 은행가들은 공존의 관계를 유지할 때도 있지만, 서로 먹고 먹히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금융가들 사이에 이른바 「스타 워즈(STRAR WARS)」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것이다.
지난해 헤지 펀드인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가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 월가 은행들은 뉴욕 FRB의 요청으로 40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만들어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헤지 펀드 하나가 무너지면서 발생할 수도 있는 금융시장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후에선 LTCM을 먹기 위해 월가 은행가들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었다. LTCM의 존 메리웨더 회장은 월가의 큰손인 워렌 버핏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벌렸으나, 버핏은 지분을 모두 내주지 않는 한 한푼도 지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메리웨더는 조지 소로스, 알왈리드 등에게도 돈을 부탁했지만, 이들은 거들떠 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뉴욕 FRB가 개입, 월가 은행들로 컨소시엄을 구성,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때 골드만 삭스의 존 코자인 회장은 월가 은행들의 컨소시엄에 포함돼 있었지만, 욕심을 내 버핏과 손을 잡았다. 버핏과 골드만 삭스가 공동으로 LTCM을 인수하자는 것. 이 제의는 메리웨더에 의해 무산됐지만, 골드만 삭스는 버핏과 컨소시엄에 양다리를 거침으로써 LTCM을 거져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합병 은행에서도 은행가들 사이에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살 벌한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네이션스 뱅크와 합병한 뱅크 어메리카의 경우를 보자.
합병 회사의 휴 맥콜 회장은 지난해 10월 갑자기 이사회를 소집했다. 은행의 수익이 떨어지고 있는데,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는 회의였다. 피합병은행인 뱅크 어메리카에서 회장을 맡았던 데이빗 쿨터씨는 합병회사에서 사장을 맡고 있었다. 이사회가 열리면서 합병회사의 손해가 과거 뱅크 어메리카 쪽에서 발생했다는 보고서가 올라왔다. 이사들은 그 자리에서 사장의 책임을 물었다. 당신이 뱅크 어메리카를 경영할 때 생긴 손실이니 물러나라는 내용이었다. 합병한지 6개월이 갓 지난 시기였다. 옛 뱅크 어메리카 쪽의 이사들은 할말이 많았지만, 합병회사의 최고경영자(CEO)와 본사를 모두 네이션스 뱅크 쪽에 뺏겼으니, 힘으로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월가에는 떠오르는 스타 은행가·펀드 매니저도 많지만, 몰락한 뱅커들도 많다. 투자은행 그룹에서 유명세를 날리던 골드만 삭스의 코자인 회장은 올초 사내 5인방이 주식공개에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하는 바람에 CEO를 물려주고 실권을 잃고 말았다. 80년대 뉴욕 채권시장을 주물렀던 살로먼 브러더스사의 존 굿프렌드 회장은 사기 사건에 휘말려 회사를 떠나야 했다.
월가 은행가들은 이익 추구라는 말로 영업의 논리를 펴지만, 다른 한편에선 개인의 영리 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적을 물어뜯는 야수의 생리에 젖어있는 야누스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