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통계청, 재정부서 독립을


한 나라의 통계에 대한 신뢰성은 우선 통계 생산기관의 전문성과 조직의 거버넌스에 의해 평가받는다. 그런데 독립성과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들, 선진 통계 시스템으로 많은 나라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온 캐나다 통계청장이 지난해 센서스를 앞두고 돌연 사표를 던졌다. 통계청을 관할하는 상공장관이 100년 가까이 실시해온 '긴 조사표(long form)' 조사대상자가 설문에 의무적으로 응답하도록 한 오랜 관례를 깨고 자유재량에 맡기면서 사전에 통계청장과 상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별 통계 투명성 도마 위에 보수정권은 응답자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지난 1918년 통계법 제정 이후 장관이 센서스에 처음으로 직접 개입, 통계의 독립성을 크게 저해했으며 긴 조사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저소득ㆍ소수민족의 데이터 수집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는 정치적 비난을 받았다. 캐나다 통계청은 자국과 미국의 통계학회는 물론 국제통계기구(ISI)로부터 비판적 공개서한을 받는 신세가 됐다. 아르헨티나 통계청은 '소비자물가지수를 조작해 물가상승률을 실제보다 훨씬 낮게 발표했다','국내총생산(GDP) 등을 포함한 모든 통계가 과대 추정됐다'는 내부 전문가들의 폭로로 홍역을 앓았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더 나아가 민간기관에 자체 조사한 물가지수 발표 금지, 이를 어긴 조사기관에 미화 10만달러가 넘는 벌금 부과, 계속 어길 경우 구속하겠다고 탄압했다. 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기준에 맞게 통계를 생산할 것을 권고했고 미국 통계학회를 위시한 국제사회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아르헨티나 정부를 고발했다. 국가통계의 독립성은 국가통계 시스템, 권력 개입이 불가능한 거버넌스를 보여줌으로써 증명된다. 국민이 믿을 수 있게 하는 제도적 보장과 정치지도자의 확고한 자세가 외부 영향없는 자유로운 통계 생산을 보장한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 1990년대 금융위기로 큰 어려움을 겪은 멕시코는 최근 통계 생산기관장을 임기제로 바꾸고 독립성을 갖게 하는 대신 의회에 책임지도록 함으로써 선진 통계체제로 진입,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던져줬다. 반면 막강한 권한과 인사권을 가진 우리나라 기획재정부는 통계청을 종속된 외청으로만 취급한다. 통계 독립을 왜 그리 불안해하는지 알 수 없다. 인사에 숨통을 터주기 위한 자리 때문이라면 더더욱 한심하다. 이제는 기술적 역량과 행정적 추진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통계와 첨단 자료수집 기법개발, 객관적분석·연구기능을 망라한 선진 국가통계 시스템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전문가가 통계청장의 최우선 자격요건이 돼야 한다. 재정부에서 내려온 비전문가 수장과 경제통계국장을 포함한 수명의 행정관료가 통계의 진로를 좌우하기에는 국가통계가 너무나 전문적 분야로 발전했다. 유엔이 1994년 공표한 '기본통계원칙'과 ISI가 2010년 개정 공포한 '통계인의 윤리강령'은 각국 정부가 통계 생산기관의 중립성·독립성 보장 방안을 강구할 것을 촉구했다. 청장 임기제·국회인준 검토를 상급기관에서 온 비전문가가 생산한 통계자료를 근거로 상급기관의 정책수행평가를 한다면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이런 통계자료는 사소한 실수가 있더라도 국제적 불신을 초래하고 통계 전반의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우리나라는 재정부 장관이 국가통계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국가통계위원회 의장까지 맡고 있어 통계청의 독립적 감시ㆍ견제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도약으로 새로운 경제선진국, 견제해야 할 경쟁국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우리가 등한히 해온 분야는 국제적 비판ㆍ시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ISI의 더블린 총회에서는 이미 국가별로 통계의 투명성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아직 별 사고가 없었다며 무사안일한 태도를 견지한다면 언제 큰 망신을 당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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