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2,067%… 단기빚만 1조5천억/현대 후광 힘겨운 버티기도 끝내 무위로/만도기계·시멘트·건설 등 화의 신청할듯성장가도를 질주해온 한라그룹의 좌초는 무리한 사업확장의 끝과 국제통화기금(IMF)의 파장을 확인시키면서 재계에 큰 파장과 충격을 주고 있다.
한라는 정인영 명예회장의 밀어붙이기를 앞세워 창립 35년만인 현재 17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12위의 대그룹으로 성장했으나 무리한 투자와 이에 따른 재무구조의 악화로 무너지고 말았다.
◇왜 무너졌나=전남 영암에 삼호조선소를 세우면서 조선, 산업기계, 플랜트설비 등에 1조원이라는 거금을 쏟아부은 것이 화근이 됐다. 21세기 재계 10위 안으로 그룹을 끌어올릴 견인차로 기대를 모았던 한라중공업은 지나친 확장과 조선시황 악화에 따른 선가하락이 겹치면서 지난해에만 4백78억원의 적자를 냈다. 더구나 2조6천억원에 이르는 부채 중 단기부채만도 1조5천억원이 넘는 중공업의 경영구조는 그룹을 벼랑끝으로 몰았다. 한라그룹은 자기자본(3천57억원·96년말 현재)에 비해 부채가 6조3천57억원으로 부채비율이 2천67%에 달하면서 올들어 한보에 이어 대그룹의 연쇄부도 도미노에 휩싸일 때마다 위험기업으로 지목돼 왔다.
한라는 올해초 정몽원 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하면서 재도약을 노렸으나 중공업의 부담을 이기지 못했다. 이후 한라는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정인영 명예회장의 우애로 현대가 한라의 위기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후광」에 힘입어 힘겨운 버티기를 해왔으나 IMF파장에 따른 금융 및 기업경영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현대도, 주거래은행도 손을 들게 만들었다.
◇한라 어떻게 되나=자생력이 있다고 보고 있는 기업은 합작기업인 한라공조·한라일렉트로닉스(미포드와 50%씩 출자), 캄코(독일 보시와 50%씩 출자) 등 3개. 나머지 15개는 진로가 불투명하다. 그룹은 이 가운데 채권단이 도와주면 회생이 가능한 기업으로 만도기계, 한라시멘트, 한라건설 등 3개사를 꼽고 있으며 한라는 재무상태나 사업성 등을 감안할 때 화의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인수설이 나돈 한라중공업은 법정관리후 제3자매각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한라해운은 해운산업의 극심한 불황으로 보유선박 매각후 폐업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분석된다.
펄프제지, 자원, 창업투자, 마르코폴로호텔, 정보시스템, 산업기술 등 군소계열사들도 8일 중 법정관리와 화의중 하나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때 한라는 만도기계와 시멘트, 건설 등 화의신청 업체중 일부와 합작사를 중심으로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겁에 질린 재계/‘IMF체제 파국의 서곡아닌가’ 극도 충격/차업계 부품 비상… 조선·건설공사 차질
◇재계에 미칠 파장=정부·재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부는 IMF체제가 시작된 이후 첫번째 재벌그룹 도산으로 침체와 위축분위기를 더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고 재계는 「부도도미노」가 심화되는 출발로 보고 있다. 재계는 큰 충격 속에 「겁에 질린」 표정이다. 이는 『더이상 보호막은 없다』는 절박함이다.
주요그룹 관계자들은 『며칠전 채권은행들이 서로 협조해 한라의 부도를 막아주고 이달말까지 기회를 줄 것으로 알려졌으나 불과 3일을 넘기지 못했다』며 위기감을 표시하고 있다. 더구나 한라는 국내 정상의 그룹인 현대의 지원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재계의 충격은 더욱 크다. 재계는 또 정부가 IMF파장에 따라 위축된 국민과 재계의 분위기를 고려, 대기업도산은 당분간 막아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한라의 도산으로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는 정부나 은행이 기업의 연쇄도산을 막기 위해 협조나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 재계는 홀로서기 아니면 죽음의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
◇산업에 미칠 파장=판매부진에다 IMF충격으로 비상이 걸린 자동차업계는 한라사태로 위기의식이 심화돼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도는 현대자동차·현대정공·기아·쌍룡·대우중공업 등 완성차업체에 에어컨·브레이크·조향장치 등 핵심부품을 공급, 연간 1조5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최대의 자동차 부품회사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관련부품의 대부분을 만도에 의존, 연간 9천억원의 핵심부품을 받고 있어 만도의 위기는 곧바로 현대의 위기다.
한라중공업, 한라건설의 조기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피해는 확산될 수 있다.
한라중공업은 올해 11억달러어치를 수주하는 저력을 보였다. 한라는 올해 이같은 수주호조로 수주잔량이 45척, 금액으로는 18억달러에 달해 오는 2000년까지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한라의 부도로 우리 조선업계의 대외신뢰도가 떨어져 내년 수주활동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건설분야의 국책사업과 국내외사업 차질도 우려된다. 한라건설의 경우 국내외 공사현장은 70여개소이고 이 가운데 국책사업은 ▲경부고속철도 3개 현장 ▲서해안고속도로 4개 현장 ▲인천신공항 6개 현장 등이며 공사금액은 4천5백50억원이다. 시공중인 아파트는 최근 안양과 파주에서 분양한 2천6백여가구를 포함해 모두 7개 현장 5천5백여가구이며 오피스텔도 2곳 1천3백여실에 달한다. 해외현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시멘트 플랜트와 중국 상해의 사무용 빌딩 등 6개소다.<박원배·채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