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허리를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 천삼백 리가 화폭에 담겼다. 평생 풍속화와 실경 산수화 그리기에 천착해 온 혜촌(惠村) 김학수(88) 화백이 총 350미터 두루마리에 그린 '한강대전도(漢江大全圖)' 바로 그것. 1960년대 말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화가 정수영의 '한강임강유람사경도권 (漢江臨江遊覽寫景圖卷) '을 보고 그리기 시작한지 46년 만에 완성된 작품이다. 20미터 길이의 두루마리 26개에 나눠 담긴 작품은 한강의 발원지인 오대산에서부터 강원도 정선과 영월을 지나 충북 단양을 거쳐 서울과 김포 그리고 강화도에 이르러 서해 바다와 만나는 한강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그는 작품을 위해 오대산 깊은 산중에서부터 서울 한강변까지 일일이 찾아 다니며 스케치를 하고 작업실에 돌아와 정통화법으로 한강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반복했다. 작품 속 한강을 돌다 보면 오대산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는가 하면, 강화도에는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하얗게 눈이 쌓였다. 작품의 배경은 150년전 조선시대. 마포나루에는 황포돗대를 펄럭이는 배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고, 근처 사육신 묘에는 의관을 갖춘 선비들이 예를 올리고 있다. 왜 하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그렸는지에 대한 질문에 김화백은 "우리 그림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며 "일제 강점기 이전 왜색을 띄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남길 수 있는 몇 사람 중 하나로 나를 생각했다"며 사명감에서 비롯된 작업과정을 설명했다. 소정 변관식과 이당 김은호를 사사한 그는 실경 산수화의 맥을 이어온 작가다. 한국전쟁당시 단신으로 월남, 평생 독신으로 작업에만 몰두해 충신효자 150명의 일생을 담은 풍속화와 예수의 일대기를 수묵으로 그린 '예수의 일생', 공자의 일생을 담은 '공자의 생애' 등을 그렸다. 그는 "피난시절 인물화를 오랫동안 그리면서 사람의 표정과 동작을 자유자재로 묘사하게 됐다"며 "이번 작품에도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 속에 숨쉬는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고 말했다. 전시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에서 10월 8일까지. (02)399-1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