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새한종금손배소] 금융기관 사금고화 대주주 불법관행 쐐기

『금융기관을 더이상 「사(私)금고」로 이용하지 말라』. 법원이 19일 새한종합금융의 전 오너인 나승렬(羅承烈)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전액승소 판정을 내린 것은 기업주가 계열 금융기관을 불법 자금통로로 이용하는 행태에 쐐기로 박는 판결이다. 어느 정도 기업이 커지면 금융기관을 매입하고, 이를 통해 금융기관을 다시 기업의 성장 발판으로 삼는 「한국식 관행」을 뿌리뽑겠다는 표현인 셈이다.◇새한종금의 소송 과정=지난 5월 전격적인 영업정지후 3개월만에 인가취소된 새한종금은 산업은행 휘하에 있을 당시만해도 국내 6대 선발종금사로 자리매김했었다. 새한은 그러나 지난 97년1월 정부의 민영화 조치에 따라 거평그룹에 넘어가면서 점차 쇠락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영업정지와 함께 감독당국인 신용관리기금의 관리에 들어가면서 새한종금의 좌초원인은 점차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찰 수사결과 거평그룹은 모그룹의 계열금융기관과 「교차금융(바터제)」 형식 등을 통해 새한종금으로부터 법정한도치를 1,000억원이상 초과한 2,970억원이나 대출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새한종금의 영업정지 당시 관리인이었던 장래찬 신용관리기금 현 관리국장도 『새한은 거평때문에 망했다』는 말을 되뇌곤 했었다. 새한종금은 이에따라 지난 7월 거평그룹의 오너인 羅회장을 상대로 『계열사에 대한 불법대출로 손해를 보았다』며 소송을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기업들의 사(私)금융 실태=지난 4월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정부와 가진 분기별 협상에서 금융기관의 대주주 및 동일계열 기업군에 대한 여신한도를 대폭 축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주주가 금융기관을 사금고화하고, 기업부실이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 IMF의 이같은 요구는 국내 금융기관, 특히 보험과 종합금융·상호신용금고 등 소위 개인이 오너로 있는 곳들의 여신관행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삼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종합금융사의 경우 대주주여신한도를 이번 법개정에서 자기자본의 50%(어음할인, 지급보증 포함)에서 25%이내로 대폭 축소하기에 이르렀다. 「계열 금융기관은 곧 돈창구」라는 인식은 그간 국내 거의 모든 대기업 오너들의 뇌리 속에 뿌리박혀 있었던게 사실. 5대그룹의 경우만 해도 많은 곳은 10개 이상의 금융기관을 소유하고 있거나 주식을 대량 보유중이다. 또 이름이 알려진 기업이라 하면 너나할 것없이 파이낸스 등을 하나씩은 거느리고 있다. 기업들은 또 새한종금의 예처럼, 대주주여신한도를 피하기 위해 바터제를 통해 자금수혈을 받아왔다. 이런 관행은 기업들의 급성장에 밑거름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일부 금융전문가들은 『국내 경제규모가 짧은 기간안에 급성장을 달려왔던 주요 원인중 하나가 바로 이같은 관행때문이었다』는 아이러니한 혹평을 내놓기도 한다. ◇새한종금 손배소의 의미=새한종금의 이번 손배소 승소는 이같이 독버섯처럼 퍼진 관행을 뿌리뽑기 위한 형사적 첫 조치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계열 금융기관을 오너의 성장을 위한 「종속기구」로 더이상 삼지말라는 일종의 「경고장」인 셈이다. 금융계에서는 일단 이번 조치로 금융기관을 보유중인 개인 대주주들의 입지는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내놓고 있다. 정기영(鄭琪榮)삼성금융연구소소장은 『부실경영에 영향을 미친 대주주에게 손실부담 차원에서 죄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단순한 대주주라는 이유로 죄를 묻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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