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느슨해진 올가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정부안이 확정됐다. 물론 국회 심의과정에서 정부안이 바뀔 가능성도 있지만 정부로서는 많이 양보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출총제 대상을 대기업집단에서 중핵기업으로 축소하고 출자한도도 현행 순자산의 25%에서 40%로 대폭 확대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집했던 환상형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는 ‘이중규제’라는 여론에 밀려 백지화됐다. 그렇다면 출총제의 정부안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기업들은 만족할까. 삼성ㆍ현대차ㆍSK 등 순환출자구조를 가진 대기업집단들은 일단 ‘그룹 해체’라는 발등의 불은 피했다고 한숨 돌리지만 여전히 출총제 대상이다. 정작 투자의 키를 쥐고 있는 기업들은 예전보다는 느슨해졌지만 출총제라는 올가미에 아직도 묶여 있는 셈이다. 여기다 기업들은 느슨해진 올가미가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조여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 자산 6조원인 대그룹의 경우 3~4년 뒤면 자산 10조원이 될 것이고 40% 한도도 2~3년이면 소진해 다시 출총제가 투자의 걸림돌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재계와 야당ㆍ여당의원까지 폐지를 주장하는 출총제를 유지시킨 이유는 재벌총수의 무분별한 지배권 강화다. 하긴 재벌정책의 책임자인 권오승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간부회의에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윤동주의 서시(序詩)를 읽으며 비장한 심경까지 내비쳤다고 하니 정부로서는 출총제 폐지 카드를 쉽게 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출총제가 글로벌 무한경쟁이라는 현실에 맞는 규제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기업의 대주주 전횡이나 문어발식 확장은 시장이 판단해서 충분한 대가를 치르게 할 정도로 기업환경은 변했다. 참여정부가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내세운 지 3년이 지났다.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겠지만 성급한 결과물은 ‘보여주기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말 경제를 활성화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사실상 폐지나 다름없는 완화’라고 주장하지만 엄연히 살아 있는 규제는 언젠가는 또다시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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