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삶의 여정서 겪는 상처와 치유 과정 담아"

고고학 배경 장편 소설 '박하' 출간한 허수경 시인


"모두가 자신의 상처에 아파하면서 살아가지만 정작 상처의 본질에 대해서는 누구도 선뜻 말을 건네지 못하지요. 이번 작품은 상처와 상처간의 커뮤니케이션, 그에 따른 관계의 복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1992년부터 독일 뮌스터대에서 고고학을 공부해 온 허수경(47ㆍ사진) 시인이 장편 소설 '박하'를 들고 고국을 찾았다. 지난 2006년 고대근동고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독일인 교수와 결혼해 독일에서 살고 있는 작가는 내년이면 독일 생활 20년을 채운다. 13일 홍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작품의 배경을 잔잔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번 작품의 계기가 된 것은 6년 전 터키의 한 고고학 발굴 현장이었어요.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였던 하투샤라는 폐허 도시에서 진행된 발굴 작업에 참여했는데, 처음 그곳을 방문한 날 바위 계곡에 피어있던 야생 박하를 보았습니다. 박하 향은 희미했지만 향기에 몰두할수록 향이 더욱 진해지며 깊은 여운을 남기더군요. 그때 향기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서 4개월여간 연재되며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소설 '박하'는 출판 편집자인 주인공 이연이 실업자가 되고 교통사고로 아내와 두 아이를 잃어버리면서 시작된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대학 동기가 고고학자 이무의 기록을 건네고 이를 계기로 이연은 이무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독일과 터키로 떠난다. 그가 모두에 밝힌 대로 한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겪는 상처와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작가는 고고학과 문학이라는 이질적인 듯한 학문에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고고학은 중요한 흔적을 발굴해 실험실에서 분석한다는 점에서 자연과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고고학을 하는 사람들은 역사 속으로 걸어가는 여정 속에 있어요. 특히 발굴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사유의 시간은 문학과도 비슷하지요. 두 분야 모두 고통스러운 작업이라는 점도 공통적입니다. 뙤약볕에서 몇 시간씩 발굴하는 것 못지 않게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하는 것 자체가 고행이니까요." 시인으로 등단하고 지속적인 시 작업을 해온 작가에게 소설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랜 세월 외국 생활을 하면서 '한글 공동체'에서 떨어져 있다는 위기감이 컸어요. 지속적으로 말을 연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소설입니다. 시는 언어가 정제돼 있지만 소설은 저인망과도 같아서 아무리 작은 물고기(언어)라도 잡아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시 작업뿐 아니라 소설 집필, 번역까지 다양한 글을 쓰고 있는 그는 하지만 본인은 태생적으로 시인이라고 강조했다. "자아를 출발하게 한 지점도, 완성시켜 준 것도 시"라면서도 작가는 "뒷문을 항상 열어 놓고 살고 있으니 어느 순간 영감이 퍼뜩 들면 시를 쓸지 소설을 쓸지 지금은 예상할 수가 없다"고 에둘러 말했다. 다시 독일로 떠나는 작가는 독자들에게 "내가 떠남으로써 '고아'가 되는 내 책들을 따뜻한 눈길로 돌봐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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