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7일] 존 허셸

‘달에 사는 인간의 모습이 망원경에 잡혔다’는 뉴스가 런던을 뒤흔들었다. 추문이나 들춰내던 대중지 선(Sun)의 보도였지만 믿는 사람이 적지않았다. 천문학자 존 허셸(John Herschelㆍ1792. 3. 7~1871. 5. 11)이 인용됐기 때문이다. 희대의 오보라도 그의 이름이 들어가면 사실로 여겨질 만큼 신뢰받았던 존의 명성이 쌓인 것은 부친 때부터. 독일 하노버 군악대에 근무하다 영국으로 이민, 음악교사, 오르간 연주자로 지내다 뒤늦게 천문학을 홀로 공부해 45세의 나이에 궁정천문학자가 된 윌리엄 허셸이 그의 부친이다. 고모인 캐롤라인(미스 허셸)도 오빠 윌리엄의 연구를 뒷받침한 천문학자로 유명하다. 대형 거울과 배율 6,540배짜리 망원경을 만들어 우주를 관찰한 끝에 우주진화론과 은하생성론을 발표, 현대 천문학의 시조로 불리는 윌리엄이 존을 낳은 것은 53세 때. 독신주의자로 지내다 친구가 남긴 돈 많은 미망인과의 결혼에서 얻은 늦둥이는 천재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케임브리지대학 수학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흑백사진 인화술을 개발해 이름을 날리던 존은 천체관측이 용이한 남아프리카에서 4년 동안 별을 헤아렸다. 6만6,948개의 별자리와 성운, 별의 밝기, 태양의 흑점활동 등을 연구한 공로로 준남작 작위(1831년)를 받은 데 이어 1850년에는 차관급인 조폐국장에 올랐다. 유명 과학자 출신의 조폐국장은 뉴턴에 이어 두번째 케이스. 존이 낳은 3남9녀 중 알렉산더 허셸은 가업을 이어받아 운석분광학을 개척했다. 지문(fingerprint) 감식법을 개발한 제임스 허셸도 존의 아들이다. 허셸은 2007년이면 우주로 날아간다. 유럽우주국(ESA)이 쏘아올릴 차세대 우주망원경에는 ‘허셸’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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