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고통을 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1년은 긴 안목에서 볼 때 우리 경제·사회 발전에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됐다.각계 전문가들은 구조조정과 경제회생, 외자유치 등을 좀더 과감하게 추진해야 하며 앞으로 1년간 경제정책의 최대 주안점을 환율과 금리 안정에 두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경제신문이 15일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IMF 체제 1년 결산과 향후 과제설정을 위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4%가 「IMF 체제 1년은 우리 경제나 사회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IMF 체제가 우리에게 독(毒)보다는 약(藥)이 되었다는 이같은 평가는 경제주권을 빼앗긴 제2의 국치로 평가되던 1년 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 주목된다.
IMF 체제 1년은 정경유착, 무분별한 과소비와 허세 등 개발경제시대를 거치면서 누적돼온 악습과 거품을 제거, 청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변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많은 응답자들이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한 전기가 마련됐으며 잘하면 경제 재도약을 이룰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앞으로의 재벌정책과 관련, 재벌을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은 11%에 불과했으며 71%는 부채비율 200% 이내 감축 등 현재의 대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중심으로 재벌의 체질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재벌체제의 효율성을 평가해 재벌의 구조조정을 무리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18%였다. 재벌개혁에서 우선 추진할 과제로 62%가 경영의 투명성 확보를, 28%가 문어발식 경영개선 문제를 지적했다.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하는 재정적자에 대해 86%가 적정하다거나 더 늘려도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다고 응답해 재정적자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인식을 드러냈다.
특히 경제회생을 위해 초기에 과감히 재정자금을 투입, 빨리 효과가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는 데 49%가 찬성했다. 재정적자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계획보다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은 14%에 머물렀다.
향후 일년간의 경제정책 초점으로 50%에 달하는 응답자가 환율과 금리의 안정을 꼽았으며 37%는 「일정수준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기조 유지」를 제시했다. 과감한 성장정책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는 13%였다.
IMF 시대를 맞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응답자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정부주도의 구조조정보다는 금융을 통한 구조조정에 41%가 찬성한 반면 업계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조정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의견도 32%에 달했다.
27%만이 정부가 지금보다 더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응답했다. 정부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은 IMF 체제가 지속되는 한 두고두고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부총리제 부활에 대해서는 찬성 55, 반대 44로 나뉘어 부활에 찬성하는 의견이 약간 많았다.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41명이 불가론을 펼쳤다.
32명은 은행소유와 관련된 일체의 규제를 없애 누구나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26명은 일정요건을 갖춘 재벌에 한해 허용해야 한다고 답해 재벌의 은행소유에 대한 조건부 및 무조건 찬성한다는 의견이 57%에 달했다. 현재 정부는 부채비율 200% 이내 등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재벌에 대해 은행 소유를 허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먼저냐, 경제회생이 먼저냐를 놓고 45%가 「구조조정을 일정대로 추진하면서 경제회생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41%가 「구조조정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경제회생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답했다. 지금보다 구조조정의 강도를 더 높여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은 14%에 그쳤다. 【손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