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주 들어온 말이 있다.
‘한국 경제는 이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과거 70~80년대의 고도성장을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의 성장잠재력은 5%를 넘지 못한다. 더욱이 앞으로는 3~4%의 성장률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비단 재야나 민간의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정책 당국자들도 이런 말을 서슴지 않는다.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성장률 3~4%의 세상에 살고 있다.
지난해 성장률은 4.8% 정도로 추계되고 있다. 올해는 3% 후반, 잘하면 4% 초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거의 5%에 가까운 성장률에도 여기저기서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앞으로 성장률 3~4% 세상에서 어찌 살아야 하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경기 순환적인 측면에서 소비가 경기의 안전판 기능을 수행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가계부채가 가구당 3,000만원을 넘어서고 실질적 실업률이 7%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계 부문이 안전판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앞으로도 2년 이상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둘째, 성장동력 측면에서 기업이 차세대산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투자하는 산업마다 돈이 됐다. 그러나 이제는 남아 있는 산업이 거의 없다. 중화학공업은 조만간 투자축소가 필요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한국의 마지막 성장산업인 정보기술(IT)산업마저도 성숙기로 접어든 것으로 판단된다. 새로운 산업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정말로 3~4%의 성장률에 만족하며 사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도록 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 변화의 하나로 우선 적자재정을 검토해볼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 미만으로 일반적으로 감내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수준인 3%에 훨씬 못 미친다. 지금처럼 수요가 제 기능을 담당하지 못할 때는 대폭의 적자재정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폭의 적자재정 편성이 부담스럽다면 투자활성화밖에는 답이 없다. 출자총액제한제도로 다 묶어놓고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만 예외로 해주는 식은 아니다. 한국 경제의 향후 10년을 생각하면 산업의 종류를 가릴만한 형편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10대 미풍양속 저해산업만 빼고 나머지는 다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정부정책에 기조적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현재의 경제상황과 경기국면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하다. 대규모 재정정책, 벤처시장 활성화정책, 금융산업 균형발전을 위한 증권시장정책 등 날마다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고 있다. 다만 국가의 장기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경제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대통령도 직접 나서서 경제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기업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나 생활경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 같다. 이와 같은 대통령의 인식변화는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 이때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들에게 커다란 힘이 아닐 수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지난 2004년을 상징하는 한자로 ‘고(苦)’와 ‘난(亂)’을 꼽았다. 2005년은 ‘행(幸)’과 ‘안(安)’으로 기록되는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