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지난 4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61%나 급등했다. 3월 물가상승률이 50%를 훌쩍 넘겼지만 진정되기는 커녕 상승폭이 더 가팔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내전으로 공급 차질을 빚은 전기와 가스, 수도 요금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8%나 급등해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교전에 따른 사상자가 꾸준히 발생하면서 의료 요금도 같은 기간 46%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는 성장은 커녕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4·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15.2%나 급락했으며 지난해 전체로도 -7.5%의 성장률을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못지 않은 침체를 겪고 있다. 올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내전 여파가 본격화하면서 1·4분기 성장률은 전년 대비 무려 -17.6%나 하락했다. 화폐 가치 또한 폭락해 내전 발발 전만 해도 1달러당 9그리브나이던 환율은 지난 5일 기준 21그리브나로 두 배 넘게 올랐으며, 지난 2월에는 무려 33그리브나까지 치솟기도 했다. 화폐 가치 급락과 살인적인 인플레가 지속되자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은 3월 기준 금리를 한번에 10.5%포인트 올려 30%까지 인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우크라이나의 경제 성장률을 지난해보다 더 악화된 -9% 안팎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민간 부문의 예상치인 -10%와 비슷한 수치로, 우크라이나 경제가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기까지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야르세니 야체누크 우크라이나 수상은 FT와의 인터뷰에서 "1분기 경제가 휘청대고 있다"고 말했으며, 아이바라스 아브로마비시우스 경제장관도 "소름끼치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우크라이나 경제를 억누르는 또 다른 요인은 외환보유고 감소와 막대한 대외채무다. 지난해 말 기준 우크라이나의 국가 채무는 GDP의 25% 수준인 300억 달러(약 33조 2,130억원)를 넘었고, 이 중 올해 갚아야 할 채무액만 110억 달러(약 12조 1,781억 원)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속되는 무역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로 우크라이나의 외환 보유액은 지난해 56억 달러 정도로 대외 채무액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가시화하면서 IMF는 지난 2월 향후 4년에 걸쳐 175억 달러(약 18조9,000억 원) 규모의 긴급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유럽연합(EU)도 4월 2억 5,000만 유로(약 3,116억 원)의 차관을 제공했다.
경제 회복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지만 주요 산업과 생산시설이 밀집돼 있는 동부지역이 내전으로 폐허가 돼버려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동부의 도네츠크 지역은 석탄 광산, 제철 공장 등이 밀집한 우크라이나 산업의 심장부다. 1990년대 설립된 우크라이나 최대 해바라기 오일 생산공장은 지난해 여름 폭격으로 무너졌고, 43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던 도네츠크 야금공장은 현재 전체의 10% 정도만 가동하고 있다. 또 800여 명이 일했던 공장은 폐쇄돼 생활기반을 잃은 주민들은 도네츠크를 떠났고, 철강 산업에 핵심원료인 코크스(탄소질 고체연료) 공장도 잇따라 문을 닫았다. 이로 인해 1·4분기 우크라이나 전체 산업생산은 20% 이상 감소했다.
어두운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금리 인상 등을 통해 화폐 가치를 안정시키는 한편, 세금 제도 개혁을 통해 재정 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실제 1·4분기 정부 수입은 환율 하락과 세수 증가로 전년대비 3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민간 저축도 지난해 1월 이후 처음으로 증가했으며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 억제 정책으로 물가 상승세도 다소 주춤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향후 외국인투자를 늘리기 위해 제도 개편 등 우호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브로마비시우스 경제장관은 "역사적으로 분쟁 중인 나라가 거대한 개혁을 진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며 "우리는 하루 빨리 우크라이나 경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며 경제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교전 지역인 동부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양측은 2월 민스크협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휴전에 돌입했지만 4월에도 중화기로 교전을 벌여 7명의 우크라이나 군 사망자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