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언제나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국가 경제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기업인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소신이 무엇이었는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1968년 2월 착공된 이 공사의 당초 공기는 3년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의 기술수준과 장비로는 428㎞의 고속도로 건설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이때 기계화를 통한 공기단축이 사업의 열쇠라고 판단,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액수인 800만달러어치의 중장비를 들여와 예정보다 짧은 2년 5개월 만에 완공시켰다.
그는 또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강인한 의지와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사업을 다각화해나가던 그에게 장애는 없었고 자신감만 있었다. 1971년 현대중공업 창업 당시 그는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에 차관을 구하는 과정에서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가리키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전인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 단지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었을 뿐 그 잠재력은 그대로 갖고 있다"는 말로 그들을 설득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계산을 토대로 사업을 진행시켰다. 그는 198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굴의 도전, 모험정신, 이것으로 누구나 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치밀한 검토와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며 "밖에서 볼 때 현대가 속단하고 창험(昌險)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치밀한 계획, 확고한 신념 위에 불굴의 정신을 갖고 밀고 나가기 때문에 실패를 모른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는 '창조적 기업가 정신'이다. "임자, 해 봤어"라는 그의 물음이 바로 이를 상징한다.
이를 보여주는 일화가 바로 서산간척지 개발이다. 그는 1980년 초 서산 앞바다의 간척지 사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그곳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 20만톤 이상의 돌을 구입해 매립해야만 물막이가 가능한 곳이었다.
그는 이때 "밀물과 썰물의 빠른 물살을 막기 위해서는 폐유조선을 침하시켜 물줄기를 감속시킨 다음 일시에 토사를 대량 투하하면 제방과 제방 사이를 막을 수 있다"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이라고도 불린 이 공법 덕분에 현대건설은 계획 공기 45개월을 35개월이나 단축, 9개월 만에 완공시킴으로써 총 공사비를 280억원이나 줄였다.
언제나 치밀한 계산과 실천하는 경영, 그리고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진 그에게 '기적'이란 없었다. 그는 1984년 현대그룹 간부 특강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외국학자들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경제에는 기적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온 국민의 진취적인 기상, 개척정신, 열정적인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다. 기적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