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펌 대표와의 '솔직토크'] 윤기원 법무법인 한빛·자하연 대표변호사

치맛바람에 우등상 못탄 恨 "변호사 되자마자 촌지 퇴출 운동 나섰죠"<br>학교 운영위원회장까지 맡으며 소풍때 선생님 도시락 관행 없애<br>상대방 배려할줄 아는 인재 선호 "공익·수익성 함께 추구하는 한국형 로펌 만들고 싶어"



법무법인 한빛ㆍ자하연의 윤기원 공동대표변호사는 학창시절 우등상 한번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학교 성적이 바닥을 긴 것도 아닌데, 윤 대표에게는 ‘기회’가 좀체 주어지질 않았다. 공부도 나름 잘 했지만 초등학교는 물론 중ㆍ고등학교 내내 우등상은 그를 피해갔다. 윤 대표는 초등학교 1학년때 아버지를 여위었다. 윤 대표의 어머니는 생계를 책임지느라 다른 부모들처럼 학교를 자주 찾아가 아들을 뒷바라지할 형편이 못 됐다. 중학교때는 담임 선생님이 윤 대표를 불러다 놓고 “왜 부모님이 학교를 방문하지 않느냐”며 구박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과거 60~70년대 윤 대표의 학창시절 때는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들이 더러 있을 때였다. 윤 대표는 “나보다 못난 동기도 상을 받는데, 순진한 생각에 나는 당연히 받을 거라 기대한 적도 있었다”며 “그런데 늘 내 앞까지만 상을 주더라”고 여전히 아쉬워했다. 윤 대표는 ‘촌지’가 우등상을 주고 안주고 하는 기준이 됐다는 사실을 철이 들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자기보다 못났다고 생각했던 동기는 부모님이 거의 매일 학교를 찾아오는 바람에 학기말 늘 우등상을 거머쥐고 의기양양해 하던 모습은 있을 수가 없는 장면이다. 억울할 노릇이었지만, 선생님의 존재는 ‘하늘’과 같은 때여서 “나보다 못한 애 한데는 상을 주고, 나는 왜 상을 주지 않냐고”고 따져 물을 용기도 내지 못했다. 윤 대표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생계 때문에 한번도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이런 게 다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 이런 아픔이 평생의 한으로 쌓여 윤 대표는 변호사가 되자 말자 촌지 퇴출 등 교육운동에 나섰다. 결국 학교 운영위원회장까지 맡으며 촌지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촌지를 주고 받는 분위기를 완전히 없앴다. 소풍 갈 때 선생님들의 도시락을 학부모들이 싸던 관행도 교장선생님 등을 설득해 금지시켜 버렸다. 처음에 선생님은 물론 동료 학부모들도 이단아 취급하며 불편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윤 대표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너희들을 도와주마”= 윤 대표는 대학시절 운동권이었다. 시위에 적극 나서는 편은 아니었지만, 시대상황에 대한 고민은 컸다. 대학 3학년 때 장래문제를 놓고 열흘 밤낮을 꼬박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자신은 남들처럼 현장의 투사가 될 수는 없다는 자기 한계였다. 타협점으로 윤 대표는 법조계 진출을 선택했다. 당시 친구 중 몇 명은 시위사태에 연루돼 ‘깜방’ 에 들어갔고, 노동현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윤 대표는 속으로 “나중에 너희들을 서포트하겠다”고 다짐하면서 학교에 남아 공부에 전력했다. 결국 그는 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시험 합격 후 윤 대표는 곧바로 군 입대를 했다. 군 복무시절 그는 의식있는 변호사들이 모여 사회적 약자를 법률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제대를 하자 말자 그날로 민변으로 달려가 일을 거들었다. “동료들에게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민변에서 일을 하다 보니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다.”는 게 윤 대표가 민변을 가장 먼저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마음맞는 동지들 만났다”= 윤 대표가 이끌어 온 법무법인 자하연은 지난 17일 법무법인 한빛과 법무법인 새길의 서울사무소와 전격 합병했다. 합병에 대한 생각을 한 지 4~5년만의 성과라 기쁨도 더 컸다. 윤 대표는 “마음 맞는 동지를 만난 것 같아 기쁘다”며 상당히 들떠 있다. 주위에서는 로펌간 합병에 상당한 진통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실제는 정반대다. 오히려 더 의기투합해 보자는 내부 분위기가 생겨났다. 합병 후 로펌이름을 놓고 막판 자존심 싸움도 벌이기 마련이지만, 한빛과 자하연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 상대방 로펌 이름을 그대로 쓰자며 양보하고 나선 것. 결국 윤 대표는 당분간만 ‘한빛ㆍ자하연’을 나란히 쓰기로 했다. 하지만 합병을 통해 더 큰 길을 가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조만간 새 기업이미지(CI)와 새로운 이름을 선보일 계획이다. 윤 대표는 “파트너 변호사나 후배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공익활동에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모든 변호사들이 뜻을 모아 나갈 것으로 믿는다”며 합병후에도 공익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합병은 또 다른 시작의 첫 걸음= 한빛ㆍ자하연은 합병후 변호사 수 50여명의 규모로 커졌다. 윤 대표는 그러나 “시작에 불과하다”고 단호히 말했다. 윤 대표는 “지금은 더 발전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은 것이지 완성된 것이 아니다”며 “동질적인 공동체로 젊음과 전문성을 무기로 경쟁력있는 로펌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이를 위해 인재발굴에도 애착을 보이고 있다. 그는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인재를 선호한다. 그리고 당장 돈은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도 윤 대표가 애착을 갖는 인재다. “누구든 혼자라면 금전이나 자리의 유혹에 쉽게 흔들릴 수 있겠지만, (동료 변호사들이) 함께 한다면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윤 대표의 꿈은 “다른 후배 변호사들에게 따라 해 보고 싶을 정도의 로펌을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공익과 수익을 함께 추구하는 한국형 로펌을 만들고 싶다”는 게 진정 그의 장기 목표다. ◇주말에는 스포츠 즐겨= 그는 주말이면 만사 제치고 ‘노는데’ 열중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변호사가 된 후부터는 주말이면 꼭 테니스, 수영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는 ‘타이 브레이크’라는 테니스 모임을 15년째 주도하고 있다. ‘타이 브레이크’라는 모임을 만든 것은 실력차가 나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섞여 운동하고 싶어서였다. “테니스 동호회는 실력에 따라 A, B조로 나누는데, 실력이 월등한 A조 회원들은 실력이 떨어지는 B조 회원과 운동하는 것을 꺼리더라”며 “실력은 떨어지지만 서로 배려하면서 운동을 하고 싶어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테니스에 푹 빠져 아침 먹기 전, 점심 시간, 퇴근 이후 등 하루 종일 테니스를 친 적도 있다. 요즘은 골프를 시작했다. 테니스를 치다가 어깨를 다친 탓도 있지만, 로펌 대표변호사라는 자리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골프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작용했다. 윤 변호사는 “처음에는 골프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감도 있어 머뭇거렸지만, 비즈니스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어 과감하게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여전히 대학시절 운동권 동료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가 민변 사무총장과 부회장,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 위원 등을 지낸 것도 이 같은 부채의식이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윤 대표는 단지 수익을 올리기 위해 공익에 반하는 사건을 수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부 대형 로펌들이 공익에 반하는 사건을 맡으면서도, 공익활동도 함께 한다고 홍보하는 것은 형식적이고 생색을 내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진정성을 가지려면 로펌의 모든 일이 공익의 범위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익과 수익을 함께 추구하는 그의 꿈이 아이디어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한국형 로펌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을 것인지 여부는 한빛ㆍ자하연의 향후 활동에 달려있을 듯하다.
■ 법무법인 한빛ㆍ자하연은

관련기사



기업·금융·M&A·부동산 자문·소송분야 두각
법무법인 한빛ㆍ자하연은 금융과 기업 인수ㆍ합병(M&A), 부동산 등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한빛과 자하연, 새길(서울사무소)이 하나로 합쳐 탄생했다. 지난 1996년 설립된 법무법인 자하연은 주로 공공기관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법률 자문과 소송 수행 등 법률 서비스를 실시해 왔다. 최근 들어서는 벤처기업의 설립, M&A, 상장, 경영 등의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자하연의 변호사들은 변호사의 공적 책임을 중시하여 대한변호사협회 등 각종 공익 단체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법무법인 한빛은 1992년 설립됐으며 금융과 M&A에서 남다른 강점을 갖추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 구조조정이나 기업구조조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등 국내 금융회사 및 기업들과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법무법인의 합병에 참여한 새길(서울사무소)은 줄곧 기업 중심의 법률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법무법인 한빛ㆍ자하연은 그동안 기업, 금융, M&A, 부동산 등의 분야에서 쌓아온 전문성과 공익성을 앞세워 고객들에게 고품질 전문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키워가고 있다.

■ 약력

▦ 1960년 경기 안성 출생 ▦ 1979년 서울 충암고 졸업 ▦ 1984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 1985년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 석사 ▦ 2004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 ▦ 2006년 법무법인 자하연 대표변호사 ▦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 2008년 법무법인 한빛ㆍ자하연 공동 대표변호사


김홍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