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전력·재정난에 생산차질까지 곳곳 여진… 살얼음판 日경제

동일본 대지진 1년<br>인프라 붕괴로 수출 차질, 경영 실적도 줄줄이 악화<br>태양광·LED 급속 보급등 친환경 기술은 촉진 계기<br>엔고 등 넘어야할 산 많아 부활-침체 수렁 기로에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평온한 일상이 반복되던 일본 동북부 지역은 '지옥'으로 변했다. 땅이 갈라지고 집이 무너져 내리는 규모 9의 초대형 지진이 일본을 강타했다. 일본의 관측사상 최대 규모의 대지진이다. 그로부터 약 10분 뒤, 대지진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쓰나미가 땅을 집어삼켰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건물과 자동차, 도로와 함께 시커멓게 밀려드는 물 속으로 사라졌다. 맹렬한 물살의 공격을 받은 후쿠시마(福島) 제1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1일 현재까지 일본 경찰청이 집계한 동일본대지진 사망자 수는 1만5,854명, 실종자는 3,276명에 달한다.


일본은 물론 전세계를 경악과 충격에 빠뜨린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사회를 3.11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는 분기점이 됐다. 대지진으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당시 미국발 금융위기가 초래한 경기침체에서 막 빠져 나오려던 일본 경제는 갑작스러운 재앙으로 인해 더 깊은 나락으로 추락한 상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그 이후 정부의 무능한 대응은 일본인들로부터 국가에 대한 신뢰와 풍족하던 전력을 앗아갔다. 무엇보다 2차대전 패전 이후 안정된 번영을 향유해 온 '안전사회' 일본은 언제 닥칠 지 모를 재난에 가슴 조리는 불안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무역적자ㆍ재정난… 경제의 틀이 무너졌다= 동일본대지진은 경제규모 세계 3위인 일본에 가공할 만한 경제적 피해를 몰고 왔다. 미야기ㆍ후쿠시마ㆍ이와테(岩手)현을 중심으로 도로와 교량, 댐 등 사회기반시설 피해, 유통망과 부품 공급망 붕괴에 따른 생산 차질, 소비 위축, 전력부족으로 인한 기업경영 악화, 피해 복구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 부담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내각부에 따르면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사회기반시설 등의 피해 규모는 줄잡아 16조~25조엔(220조~340조원 상당)에 달한다. 대지진과 관련해 도산한 기업 수는 지난 2월 말 현재 628개로 집계됐다. 대지진 여파에 더해 엔고와 유럽 재정위기, 태국 홍수 등 온갖 악재들이 겹치면서 대표 제조업체들의 경영 실적도 줄줄이 악화됐다. 지난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9%를 기록,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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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지진의 파장이 단기적인 실적 악화나 비용 증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에너지 수입이 급증한 데다 생산차질로 수출은 줄어들자 지난해 일본은 30년간의 무역흑자 행진에 종지부를 찍고 2조4,900억엔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냈다.

오는 4월이면 일본 내 54기의 원전이 모두 가동을 멈추면서 에너지 수입은 한층 더 늘어나고 기업들의 전력난도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한다면 일본은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에서 결국 경상적자국으로 전락하고, 기업들의 해외 유출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예기치 못한 재앙으로 정부의 재정건전화 및 경제활성화 계획도 완전히 틀어졌다. 대지진 피해복구 및 부흥사업에 앞으로 10년 간 23조엔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인세 인하는 사실상 3년간 보류됐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추진 중인 소비세 인상 여부도 불투명해 유럽에 이은 국채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친환경-스마트 시장은 급성장… 부활 가능할까= 그렇다고 일본 사회와 경제가 하염없이 추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재앙은 일본인들을 단합시키는 역할을 하는가 하면 경제적으로는 차세대 유망기술인 친환경ㆍ스마트 기술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여름 전력사용 제한조치까지 발동되는 전력난을 겪은 이래 일본은 예전보다 한층 더 '절전'에 민감한 사회가 됐다. 태양광과 LED가 급속도로 보급되고, 에너지 절약과 재난 대응에 초점을 맞춘 주택인 첨단 '스마트 하우스'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피해지역을 첨단 기술의 집결지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국가와 기업이 손 잡고 추진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와테현과 미야기현 등이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도입한 '스마트 시티'프로젝트를 잇따라 발표했고, 후쿠시마현에는 재생에너지 등 신산업 관련 대규모 첨단 연구거점이 들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대지진 피해를 비교적 빠르게 극복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을 두고 일본의 '저력'을 새롭게 평가하는 목소리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일본 경제는 유례없이 버거운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장기 엔고로 인한 무역적자시대 돌입과 경상수지 적자 진입의 위협, 지속되는 전력난, 재정악화, 정치적 리더십 부재 등 극복해야 할 악재가 산적해 있다. 대지진의 충격 후 만 1년. 망가진 경제가 다시 한 번 저력을 발휘해 부활의 날개를 펼칠 지,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 지 일본 경제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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