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인사이트] 부양 위해 곳간 바닥… 복지 비용도 눈덩이… 기댈 곳은 부자 뿐

■ 세계 부자 증세 논란<br>조세저항 덜해 재정건전성 해법으로 앞다퉈 도입<br>경기회복세 찬물 우려에 반대 여론도 만만찮아



# 오는 9일 일리는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선 상속세 도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대표적인 부자세인 상속세가 없어 '부자 천국'이란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가진 중국은 지난 10년간 상속세 도입 카드를 만지작거렸으나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했다. 시리(시진핑 주석ㆍ리커창 총리) 체제의 향후 10년 로드맵을 만들 이번 3중 전회에서 부의 대물림에 대한 개혁의 칼을 뽑아들 지 중국 내에서는 벌써부터 논란이 뜨겁다.

#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 보고서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부자 증세를 통해 주요 유로국의 세금을 10% 늘리면 재정 적자를 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보고서 내용이 부자 증세에 대한 권고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결국 IMF는 대변인 회견을 따로 열어 "해당 전문가의 분석이며 IMF의 공식 견해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세계 각국에서 '부자 증세'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쏟아 붓은 각국 정부들이 바닥난 살림을 되살리기 위해 부자들의 지갑에 일제히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고령화 추세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 비용도 증세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전 국민 대신 특정 소수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국민의 상대적 호응도도 높고 그만큼 조세 저항도 덜하다는 것이 각국 정부들이 부자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또 다른 이유다.

그러나 '부자 증세'는 말처럼 쉽지는 않다. 증세가 가까스로 회복세에 접어든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고, 자칫 부자들을 자기나라에서 내쫓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자는 물론 중산층에서도 증세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재정 건전성, 부자 증세가 해법?=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및 유럽발(發) 재정위기는 재정건전성 지표를 국가 펀더멘털의 가장 중요한 잣대로 만들었다.

IMF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선진국들의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10% 수준으로 사상 최고다. 금융위기 전인 2007년과 비교하면 35%포인트 급등했다. 지난 6년간의 경제 위기를 대규모 재정 지출로 막아왔지만,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는 반증이다. 국가 재정에 빨간 불이 들어왔고, 이를 풀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부자증세를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EU)로부터 재정 적자 해소 압력을 받고 있는 프랑스는 100만 유로(약 14억6,000억원) 이상의 급여에 75%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부자 증세를 비롯, 각종 세금 인상안을 밀어 부쳤다. 하지만, 도처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등 조세 저항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놀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금융이자 소득세 및 에코택스(ecotaxㆍ환경세의 일종) 추진 계획을 철회하면서도 부자증세만은 고집하고 있다. 그는 부자증세에 반대해 일정 중단이라는 극단의 카드를 꺼내든 프랑스 프로축구 구단을 향해서도 '과세 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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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미국과 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호주ㆍ캐나다 등도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실해진 재정 건전성 확충키 위해 부자 증세를 포함한, 세제 개혁을 단행했다.

◇ 복지 확대, 정치 상황 기인한 증세도 여전= 부의 불균형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신흥국 사이에서 부자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는 국민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카드다.

중국이 대표적 예다. 경제적 불평등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국의 지니 계수는 공식적으론 0.474(지난해 기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는 통계 조작에 능한 중국 정부가 제시한 허수에 불과하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선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인 0.6을 넘어섰다는 진단이 나올 만큼 중국의 부익부빈익빈은 극심하다.

세기의 재판이란 평가를 받은 '보시라이 케이스'에서 보듯 시리 체제가 들어선 후 중국은 부정부패 단속 등 대대적인 사회개혁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개혁의 일환으로 상속세 도입을 통한 빈부 격차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역시 반대의 목소리는 크다. 최근 한 중국 매체가 실시한 온라인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77%가 "상속세 도입으로 일반 서민의 재산이 줄고 중산층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관련 시스템의 미비로 국민 개개인의 재산 등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중국 현실에서 상속세 도입이 오히려 해외 이민을 부추기는 등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아 이번 3중 전회를 통해 세제 개혁이 추진될 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부자 증세 논의는 정치적으로도 보수ㆍ진보가 충돌하는 이슈다. 최근 3선 연임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사회민주당(사민당)과의 좌ㆍ우 동거 내각(대연정) 협상에 들어갔는데 가장 극심한 이견을 보이는 것이 바로 부자 증세다. 선거 기간 "증세는 없다"고 공약한 메르켈 총리에 맞서 사민당은 최고 소득구간 소득세 비율을 현행 42%에서 49%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도한 세금 못낸다" 부자 도피도= 최근 세계 최대 채권 펀드 핌코(PIMCO)의 빌 그로스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슈퍼 부자'들이 현재의 한계 소득세율을 재조정해 성과보수와 자본소득에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정책을 지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상위 0.01%에 속하는 부자가 '부자 증세'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일부 슈퍼 부자들의 이 같은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은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프랑스의 최고 부자이자 명품브랜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는 자국 내에서 추진 중인 부자 증세를 피하기 위해 벨기에로 망명을 시도했다가 여론 폭탄을 맞고서야 계획을 취소했다. 헤지펀드계의 거물 존 폴슨 폴슨앤코 대표 역시 50%에 이르는 소득세를 피하기 위해 지난 3월 자신의 조국 미국을 떠나 푸에르토리코로 절세 도피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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