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악화에 대비하려는 자구책일까. 아니면 당국의 자본 확충 요구에 화답하는 제스처일까.
고배당 관행이 뿌리 깊은 보험업계에 배당 축소 바람이 거세다.
경영 환경 악화로 수익 내기가 버거운 중소형사는 물론이거니와 실적이 괜찮은 대형사 등도 배당성향을 큰 폭으로 깎는 등 보험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긴축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벌어놓은 돈을 풀기보다는 내부 유보를 통해 혹한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대형 생명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금융 당국의 배당 자제 권고도 있고 비즈니스 여건도 어려운 마당에 굳이 배당을 늘려 평지풍파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배당성향, 크게는 10%포인트 이상 줄어=보험사들은 생명보험ㆍ손해보험 가릴 것 없이 2012 회계연도 배당을 크게 줄이고 있다. 삼성생명은 주당 배당금을 25% 줄이기로 했다. 세후 순이익에서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중인 배당성향은 31.1%로 전년 대비 11.1%포인트나 감소했다. 순이익이 소폭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큰 폭의 배당 축소로 볼 수 있다.
한화생명의 배당성향도 지난해보다 11.4%포인트 줄어든 25.7%(1,263억원)를 기록했고 배당성향이 18%대로 상대적으로 낮은 교보생명 역시 예년 정도의 배당만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순이익이 20%가량 증가한 동양생명은 배당 규모(364억원)를 늘리지 않아 배당성향이 15%포인트 떨어졌고 신한생명도 배당 규모를 250억원 삭감했다.
이보단 덜하지만 손보사 추세도 대동소이하다.
메리츠화재는 배당성향을 13.9%포인트나 줄였고 현대해상ㆍ동부화재ㆍLIG손보 등도 축소했다. 이 밖에 알리안츠생명ㆍ KDB생명 등 중형사들은 배당 계획이 아예 없다.
◇경영 환경 '시계 제로' 상태에서 나온 자구책=매년 이맘때쯤이면 보험사의 배당 이슈는 어김없이 불거졌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당국과의 신경전 속에서도 고배당을 고수했다.
올해 기류가 급변한 것은 당국의 압박도 압박이지만 외부 경영 환경이 그만큼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성훈 보험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현 수준의 저금리 기조가 계속된다면 대형사는 2015년, 중소형사는 2017년부터 적자 전환하는 것으로 나왔다"며 "당장 이익이 늘었다고 넋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수익성이 나빠지는 것과 비례해 강화되고 있는 지급여력비율(RBC) 규제도 보험사들이 배당을 자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말 기준 생보사의 평균 RBC는 331.1%, 손보사는 315.6%로 당국 권고치(150%)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지만 규제 턱이 높아지고 있어 안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일부 보험사들은 RBC 규제에 대한 부담으로 영업 전략도 새로 짤 정도다. 한 중형 보험사 관계자는 "배당으로 돈을 많이 뿌리고 난 뒤에 건전성 기준을 완화해달라고 하면 당국이 가만있겠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