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이맘때쯤이면 TV나 영화관에서는 '전설의 고향'류의 납량특집 또는 공포영화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하얀 소복에 긴 머리를 한 여자 귀신이 '월하(月下)의 공동묘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인간으로 변신한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밤마다 사람을 해치는 등 지금 보면 유치해 보이는 내용과 장면들이 단골 메뉴로 나오곤 했다. 하지만 이것도 옛말이 됐다. 최근에는 공포물들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어느새 별 따기만큼이나 보기 어려워졌다. 올여름 극장가에는 아예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 모양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불황·실직·청년실업·가계빚 증가와 같은 생활 속 공포는 물론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스릴 넘치는 삶을 사는 판에 뭐하러 돈까지 줘가며 무섭지도 않은 귀신을 보러 극장에 갈까. 차라리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게 최고의 납량특집이다. 어디 이뿐이랴. 요즘에는 무더위에 지친 국민들이 시원하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괴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중국 톈진항에서 폭발사고로 유출된 유독물질이 바람에 실려 한반도 상공을 뒤덮으면서 독극물 비가 내렸다는 것은 그나마 애교에 가깝다. 우리 측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목함지뢰 폭발사태를 두고 일부에서 우리 군의 '자작극'이라거나 미군 '음모론'을 들먹이는 데 이르러서는 씁쓸함을 넘어 무엇인가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유언비어'의 저자이자 사회학자인 시미즈 이쿠타로는 유언비어가 "정보에 대한 굶주림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심리학자 니콜라스 디폰저 역시 "루머는 불확실성, 불안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괴담 또는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배경에는 개인의 잘못이 아닌 정보 독점과 사회 불신이라는 시스템적 결함 탓이 컸다는 뜻이다. 여기에 고질적인 '편 가르기'까지 가세했으니 그 영향력이 커질밖에. 소통을 외면한 우리 사회의 책임이 너무도 크다. /송영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