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korea' = 빨리빨리?

2월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봄이 시작된 듯하다. 설악산에는 노루귀와 변산바람꽃ㆍ현호색 등 3월 중순에야 개화하는 봄꽃이 2월 중순을 지나면서 활짝 피고 있다고 한다. 상큼한 봄꽃의 향내가 반갑기는 하나 우리 땅의 꽃들도 우리의 ‘빨리빨리’ 속성을 어느새 닮아버렸나 싶어 마음 한편으로는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 우리의 ‘빨리빨리’ 속성은 이미 외국에도 소문이 자자하다. 중국의 영문표기인 ‘China’를 보통명사 ‘china’로 쓰면 ‘도자기’를 뜻하며, 일본의 ‘Japan’을 ‘japan’이라고 쓰면 ‘칠기’가 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Korea’를 ‘korea’라고 표기하면 ‘빨리빨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외국에 나가보면 상점 점원들도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먼저 배우는 것 같다. 하지만 ‘빨리빨리’는 원래 우리의 속성과 거리가 먼 증후군이었다. 오히려 여유를 갖고 유유자적하며 살아온 것이 우리 민족이었다. 그런데 수백 차례 외세 침략에서 행동을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으며 자칫하면 당쟁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몰살당하는 상황에서 빠른 행동은 필수였는지 모른다. 또한 초고속성장이 화두였던 시대를 거치면서 치열한 경쟁을 강요받으면서 ‘빨리빨리’는 우리의 생존전략으로 굳어졌다. 물론 ‘빨리빨리’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난에 허덕이던 나라가 불과 30~40년 만에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경제 대국으로 압축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속전속결의 가치관이 일조를 했으며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정보화 속도가 빠른 것도 이런 국민성 덕이 크다. 하지만 폐단도 크다. 속도만을 강조하다 보면 ‘기본에 충실할 수 없는’ 개연성이 높아진다. 특히 건설인에게 이 ‘빨리빨리’는 가장 경계해야 할 질병과도 같은 것이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부실시공이 원인이 된 사고 역시 ‘빨리빨리 증후군’이 낳은 병폐였다. 봄이 오면 산수유ㆍ매화ㆍ개나리ㆍ목련ㆍ진달래ㆍ벚꽃순으로 차례차례 피어 오랜 시간 봄 내음에 젖게 했던 꽃들이 요 몇 년 사이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꺼번에 다 피어서 글자 그대로 백화쟁염(百花爭艶)의 상태가 되고는 한다. 그렇게 피는 것까지는 좋은데 며칠 사이에 한꺼번에 ‘빨리빨리’ 낙화해버려 상춘(賞春)의 꿈에 젖기도 전에 기억조차 아스라해지게 만들어 꽃향기에 묻혀보려던 필자의 소박한 소망을 무참히 깨뜨려버리고는 한다. ‘빨리빨리’에 맞춰진 속도를 이제는 한껏 낮춰 ‘느림의 행복’에 젖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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