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퇴직연금 새 틀 짜자] <상> 안전자산 비중 낮춰라

원금보장 힘쓰다 수익 하락…위험자산 늘려 소득대체율 높여야<br>93% 안전상품 투자… 펀드 비중 0.1% 그쳐 소득대체율 20% 안돼<br>위험자산 규제 없애 자본시장 유입 유도를


퇴직연금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지 8년이 됐지만 노후 안전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원리금 보장상품에만 쏠려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 시대가 됐는데도 원금 손실을 염려하는 기업과 개인들이 원리금 보장상품만 고집하면서 퇴직연금이 은퇴 후 소득을 충분히 대체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회사가 퇴직금을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이든 개인이 운용을 담당하는 확정기여(DC)형이든 모두 원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데도 대부분이 원금보장형에만 돈을 넣어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연초 이후 3·4분기까지 퇴직연금 DB형과 DC형의 원리금보장형 평균 수익률은 2.85%에 불과하다. 수익률이 저조하니 은퇴 이후 퇴직연금이 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여력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세계은행의 퇴직연금 소득대체율 권고 수준은 30~35%이고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38~39%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10~20%에 불과하다. 성인모 금융투자협회 연금지원실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은 급속한 노령화로 재원이 바닥날 수 있고 개인연금은 일정 소득 수준이 되는 사람만 가입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퇴직연금으로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며 "예전처럼 금리가 높다면 문제가 없지만 저금리가 대세인 상황에서 퇴직연금이 원리금보장상품에 치중될 경우 제 기능을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홍범 HMC투자증권 퇴직연금기획팀장도 "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임금상승률이 연 4.5%인데 퇴직연금이 현재의 원리금보장형 투자비중을 그대로 가져갈 경우 목표 소득대체율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선진국 수준인 소득대체율 40%를 맞추려면 현재 72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가운데 21조원 이상이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은 원리금보장상품에 쏠린 퇴직연금의 기형적 구조를 바꾸기 위해 제도를 뜯어고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초 DC형과 DB형 퇴직연금의 주식투자 금지 규제를 완화한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DC형 퇴직연금은 상장주식에 직접 투자하지 못하고 DB형은 자산의 30%까지만 투자할 수 있었지만 개인 노후자산 증식과 자본시장 발전을 고려해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또 은행 등 금융사들의 자사 원리금보장상품 편입비율을 현행 50%에서 내년에 30%까지 줄이고 오는 2015년에는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퇴직연금 전문가들은 좀 더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투자 한도를 늘리는 것보다는 선진국처럼 위험자산 투자비율을 아예 없애는 쪽으로 전환해 자연스레 퇴직연금이 자본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정부와 금융 당국은 사업자들이 실적배당형 비중이 높은 DC형을 선택하도록 인센티브를 주고 DC형 가입자의 불안감을 해소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과 호주는 주식형 펀드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한도를 100%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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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도 원리금보장상품보다는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원리금보장 비중이 높은 DB형은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액수가 정해져 있어 수익성이 낮을 경우 부족분을 회사가 메워줘야 한다. 이는 고스란히 회사 부담으로 이어진다. 실제 DB형을 도입한 일부 대기업의 경우 근로자들을 위해 수백억원을 메워줘야 할 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규 한국투자증권 은퇴설계연구소 부장은 "기업들이 원리금보장보다는 실적배당형에 투자하는 게 장기적으로 부담이 덜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며 "리스크가 우려되면 기업 내 퇴직연금운용위원회를 설립해 목표수익률은 얼마인지 리스크는 얼마나 허용할 것인지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적립금을 운용해 운신의 폭을 넓히면 된다"고 설명했다 DC형에 가입한 개인들도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을 늘려야 은퇴 이후 소득대체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다만 실적배당형 상품은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는 원금보장상품에 투자하면서 점차 실적배당형으로 비중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DC형은 적립금의 40%까지 주식형 및 혼합형 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은행의 정기예금이나 증권사의 국공채 상품으로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더한 뒤 최근 3년 성과가 좋은 가치주펀드·성장주펀드·해외펀드로 투자비중을 조금씩 늘리면 퇴직연금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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