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초보 벤처사장의 창업일기] (1) 창업, 타이밍부터 성패가 갈린다

대기업 다니는 후배에게 걸려온 한밤의 전화


얼마 전 한 후배가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유인 즉, ‘더는 월급쟁이 노릇 못하겠으니 창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자정이 다된 시간에 회사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후배의 푸념을 들어봤습니다. 대기업 영업부서에서 근무하는 똑똑한 후배인데 직장 상사와 코드가 맞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럴 때에는 억지로 말릴 게 아니라 우선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는 게 상책인 법입니다. 어설프게 말렸다가는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사표를 던지는 불상사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창업에 실패한 한 지인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화제를 돌려야만 했습니다. 후배를 진정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지요. 기자 생활을 할 때 알던 분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꺼냈습니다. 대기업 홍보담당 부장으로 퇴직한 뒤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창업을 했다가 낭패를 본 지인의 사례를 들려줬습니다.

=퇴직금 3억원 날린 지인의 실패가 주는 교훈


그 분은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후배에게 밀려난 탓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회사를 나온 것입니다. 이분은 퇴사를 하자마자 인쇄업을 하는 친구와 동업을 시작했습니다. 퇴직금으로 받은 3억원을 모두 투자하면서 호기롭게 사업에 뛰어들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이미 시작부터 예고된 실패였습니다. 인쇄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업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었고 친구 회사의 재정 상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섣부르게 투자를 했으니 말입니다. 주말도 없이 일하며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2년간 고전하다가 투자금도 날리고 회사는 결국 부도가 나서 친구와 우정도 깨지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후배에게 들려주자 후배는 저에게 묻더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죠.

그 당시 후배에게 했던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창업을 하려면 철저하게 준비한 뒤 시간을 두고 전략적으로 차근차근 접근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 말입니다. 많은 분들은 창업을 하려고 사표를 던진 뒤 ‘자, 이제 무엇을 해볼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사업 실패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이미 퇴사를 결심하기 오래 전부터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성공 가능성은 낮기 마련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조급한 마음에 신중하게 따져보지 않고 성급하게 일을 벌이는 탓입니다.


=필자가 퇴사 후 10개월간 무위도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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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그런 과오를 범할 뻔 했습니다. 제 경험을 들려드리겠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부터 ‘1년 정도는 쉬면서 천천히 사업 아이템을 결정하겠다’고 오래 전부터 마음먹었습니다. 퇴사한 뒤 무작정 일부터 벌이지 않고 천천히 전략을 세웠던 것입니다. 퇴사한 뒤 무려 10개월 동안 이렇다할 직업 없이 무위도식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제가 왜 창업 타이밍 시점에서 성패가 갈린다고 말씀드렸을까요? 준비가 덜된 상태라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저 역시 주변 지인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지만 유용한 정보와 좋은 사업 아이템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전문가들과 주변 멘토에게 자문을 꾸준히 구한 결과 정말로 좋은 사업 아이템과 경영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제 인생에 분수령이 되는 조언을 듣게 됩니다. 한 지인이 사무실에 찾아와 ‘정부 지원 사업에 도전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충고를 하셨고, 그런 덕분에 큰 행운을 얻게 됩니다. 포기하지 않고 지원한 결과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입니다. 저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 3기 사업자로 2013년 봄에 선정돼 1억원 상당의 지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담 멘토링과 교육까지 받으면서 초보 사장으로서 기본기를 탄탄하게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성급하게 사업을 ‘질렀다면’ 아마도 중진공 지원사업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창업 초반에 무척 고전했을 가능성이 높았겠지요.

=회사 다닐 때 창업을 대비하고 인맥도 넓혀야

맞습니다. 창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창업 시점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고민한 뒤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좋습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틈틈이 창업에 대한 준비를 한다고 해서 잘못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인의 업무를 게을리 하지 않는 선에서 미리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은 예비 창업자로서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현직에 있을 때 인맥을 다져놓고 퇴사를 하는 게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현직에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모든 예비창업자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입니다.

참, 그 후배는 과연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했을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그날 후배는 저에게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앞으로 3년 정도는 지금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뒤 착실히 준비해 창업에 도전하겠다’고 말이죠. 창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이지만, 준비가 덜된 창업은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 큰 상처를 남깁니다. 여러분들 모두,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창업가가 되길 바랍니다.

/안길수. 벤처사업가. (주)에니그마소프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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