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호위호식하며 살던 청년은 '착하게' 사업을 하다 가진 돈을 모두 날렸다. 나이를 먹고 가정을 꾸린 후에도 '아버지께 손 내밀면 다시 또 도와주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사업을 접고 다시 하기를 반복하던 그는 IMF 위기에 직격탄을 맞아 재기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노숙자가 된 것이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 노숙자는 260여개의 가맹점을 운영하는 레스펍 '치어스'의 정한(46·사진) 대표가 됐다.
"노숙 생활을 했던 날들은 치욕스러운 시기였지만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정 대표의 회상이다. 그는 당시 비참했던 노숙 생활을 벗어나고자 공사장 인부로도 일하고, 국제전화 영업사원으로도 일했다.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던 때 '마지막 S.O.S'라고 생각하고 부모님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았다. 이 돈이 그가 외식업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다.
테이블 5개 뿐인 조그만 치킨집 사장이 된 1998년 10월부터 정 대표는 창업 전선에 뛰어든 전투병이었다. 첫 가게는 하루에 매출 10만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허울 뿐인 가게였다. 하지만 더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경쟁 가게 수십 곳을 돌아다니며 시식을 했고, 직접 튀김옷을 개발하는가 하면 추운 겨울에도 직접 원동기를 몰고 배달을 나갔다. 그의 정성은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에게 전달됐고, 하루 매출이 150만원까지 뛰는 '기적'을 경험했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차례를 기다리던 손님들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먹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이 때 한 달에 4,000만원을 벌었다.
정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외식사업에 자신감이 붙은 그는 2001년 경기도 분당 야탑동에 60평(198㎡)규모의 신개념 호프집, 레스펍 '치어스'를 시작했다. 레스토랑과 펍을 결합한 이곳은 주류 뿐 아니라 다양한 요리의 맛과 질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신선한 안주와 색다른 서비스, 세련된 인테리어가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당시 매장 단골고객들은 훗날 치어스의 가맹점주가 됐다"고 회상했다.
치어스를 안정 궤도에 올려놨지만 사업은 흐르는 물처럼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때로는 돌부리가 때로는 웅덩이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정 대표는 그러나 "지금의 치어스가 있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늘어나는 가맹점에 안정적으로 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물류센터를 건설해야 했고, 중국 사업에 힘을 쏟던 기간에는 외부 인사를 잘못 영입해 국내 사정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일시적으로 소수의 가맹점주와 의견이 맞지 않아 가맹관계를 끊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정 대표는 '내 속이 시커멓게 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창업 초기의 마음을 기억하며 진심으로 가맹점주를 대했고, 전국 곳곳에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프랜차이즈대상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개인공로부문)도 받았다.
최근엔 노숙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마치 영화같은 정 대표의 성공스토리는 '프랜차이즈의 신'이라는 책으로 발간됐다. 창업을 꿈꾸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화 형식으로 꾸며진 이 책은 폐점율이 높은 외식 창업을 위해 점주가 갖춰야 할 음식장사의 기본 자세와 실패하지 않는 창업의 노하우, 프랜차이즈 운영 원칙까지 예비 창업자에게 필요한 내용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