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1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 성과부진으로 판정된 프로젝트의 예산이 깎이기는 커녕 오히려 증액되는 사례가 있는 가 하면, 매년 수백억원씩 쓰고도 고작 수천만원의 기술료 수입을 올리는 비효율 사업이 여러 개 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1999~2005년 한국의 R&D 투자액 연평균 증가율은 12.3%(GDP 대비)로 OECD 평균(5.4%)은 물론 미국ㆍ일본ㆍ프랑스ㆍ영국(4.0~4.5%) 보다 3배 가까이 높다. 하지만 집행ㆍ관리의 비효율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예산낭비만 초래할 뿐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평가따로 예산따로 = 현재 국가 R&D 사업의 예산 배분을 최종 의결하는 기구는 과학기술부총리 주재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다. 그러나 '국과위'에서 성과부진으로 예산을 삭감키로 결정한 사업이 부처 협의 과정에서 이른바 '힘 있는' 부처의 목소리에 밀려 예산이 오히려 증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D등급 판정을 받고도 올해 예산이 증액된 산업자원부의 '민군겸용기술개발'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사업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정윤 과기부 연구개발조정관은 "분명히 (지난해) 평가에서 산자부 사업은 좋지 않은 점수를 얻었다"며 "아마도 국가위 의결 뒤 관련 부처간 협의 때 조정(인상)이 이뤄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정 조정관은 이어 "(D등급 사업의 사업비 증가가)흔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검토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2008년도 예산 배분 때 이를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가 R&D 사업의 성과평가를 전담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출범 후 과기부장관이 부총리로 격상하고 국가 전체 R&D 사업의 조정 권한이 과학기술혁신본부에 부여됐지만, 아직까지 과기부가 실질적인 권한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라고 전했다. ◇수백억원 투자한 사업 수입은 '푼돈'= 국가 R&D 사업의 비효율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본지가 입수한 KISTE의 'R&D 프로그램의 사업목적별 추진현황 분석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국가 R&D 사업 중 하나인 '우수연구센터 육성사업'은 지난해 735억원이 투입됐지만 기술료 수입은 1,100만원에 불과했다. 이 사업은 672억원을 쓴 2005년에도 2,000만원의 기술료 수입을 올렸을 뿐이다. 국가지정연구실 사업 역시 2004년 547억원을 쓰고 4억3,300만원의 기술료 수입을 올렸지만, 이듬해인 2005년에는 1억3,700만원으로 급감했다. 두 사업의 투입사업비 대비 기술료 실적은 각각 0.02%ㆍ0.29% 등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KISTEP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이후 R&D 예산은 이미 국민의 정부 때보다 2배 이상 늘었지만 투자 포트폴리오는 국민의 정부 시절인 지난 2000년 초 설계된 형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며 "이 중 참여정부에서 새롭게 추가된 신사업은 차세대성장동력 및 지역균형 관련 사업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기술 변화가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500억원 이상 대형 국가 R&D들이 여전히 부처 이해관계에 따라 장기투자 사업으로 계획돼 투자의 역동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