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경제장관간담회가 열린 20일 오후3시 과천 정부종합청사 회의실은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평소와 달리 별도의 모두발언 없이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곧이어 “장내 정리하고 회의 시작합시다. 기자들 나가주시죠”라고 짧게 말한 후 굳은 표정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배석한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부총리의 사임설이 전해진 지난 19일 오후7시께. 재경부는 KBS의 보도내용이 전해지자 김광림 차관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여는 등 초비상 상황에 들어갔다. 말단 사무관들까지 진위를 몰라 허둥대는 모습이 엿보였다. 김 차관은 곧 이부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진위를 확인했고 “(사의를 표시하는) 그런 일 없다”는 말을 듣고 해명자료를 배포하도록 지시했다.
20일 사임설은 잦아들었지만 과천 청사는 아침부터 술렁거렸다. 일부 고위관료들은 이 부총리와의 인터뷰 내용이 실린 본지 기사를 보고 “(전날 밤) 이 부총리의 심정이 어떠했느냐”고 전화를 해오는 등 긴장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날 국무회의(오전9시)와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이 부총리가 예정대로 참석하자 일단 안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 고참국장은 “최근 상황은 아는 사람이라면 이 부총리가 그만둔다는 소식을 믿지 않을 것”이라며 이내 자신감 섞인 목소리를 찾기도 했다.
시장의 반응도 비슷하다. 외국계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본점으로부터 부총리의 거취를 물어보는 전화가 잇따랐다”라며 “부총리의 진퇴가 거론된다는 점만으로도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영향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개혁의 상징으로 알려진 부총리가 개혁세력과 갈등을 빚는다는 점을 의아해하는 것 같다”며 “사표설이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관가의 반응에는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자문료 파문과 관련해 언론에 대한 섭섭함도 묻어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내용을 뻔히 다 아는데 기사들이 너무 자극적으로 나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